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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납토성과 문화재 보존에 대한 고찰 본문
△송파구 풍납동에 위치한 풍납토성
얼마 전에 자전거를 타고 풍납토성 쪽을 한번 쭉 돌아보고 왔었습니다. 같이 갔던 친구가 풍납토성에 대한 재미난 이야기를 저에게 해주길래 흥미가 생겨서 이렇게 포스팅을 해야겠다고 생각을 해놓고 지금에서야.... 역사에 관심이 깊으신 분들이야 잘 아시겠지만 풍납토성의 발굴은 현재진행형인데요, 한성백제유적 중에 가장 뜨거운 감자입니다. 풍납토성의 의의와 발굴에 대한 문제점을 살펴보고 현재 문화재 발굴 및 보존에 대한 의견을 적어보도록 하겠습니다.
풍납토성의 의의
삼국사기에 기술된 백제의 초기 수도인 위례성에 대한 위치는 한국사의 미스터리와 같은 일이었습니다. 진짜 하남시 일대라서 하남 위례성인가? 천안 직산 방면이라는 이야기도 있었고, 몽촌토성 일대가 하남 위례성이 아닐까 하는 이야기 등등이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1900년대 에는 몽촌토성이 백제 초기의 왕성이라는 학설이 유력하다고 점쳐졌습니다. 1925년 대홍수로 인해 풍납토성이 발굴이 되었을 당시에도, 사학자 이병도의 주장에 따라 풍납토성은 몽촌토성을 방위하는 사성이라고 인식되었고 이것이 학계에 수십년간 정설로 받아들여졌습니다.
일부 사학자들에게만 풍납토성이 왕성이었다고 주장이 되었을 뿐, 주류 사학계인 이병도의 학설에 큰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풍납토성의 규모가 상당했기 때문에 왕성이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의견이 꾸준하게 제기되었고, 선문대 이형구 교수에 의해 이 주장이 실제로 나타나게 됩니다.
1997년에 아파트 재건축 공사장에 몰래 들어간 이형구 교수는 지표 조사를 통해 쏟아져 나오는 백제의 유물들을 발견하게 되고 그 규모가 생각보다 상당하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현재까지 조사된 바로는 둘레가 4km가 넘고 부지는 약 26만평 이상의 규모를 자랑하는데요, 이는 한반도 내 최대 규모의 토성입니다. 또한 탄소연대측정으로 따져보면 기원전 2세기에서 기원후 3세기 사이에 축조된 것으로 보이는데요, 이는 당대 동아시아에서도 엄청난 규모의 성곽이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유적의 발굴을 통해 풍납토성을 단순 사성으로 인식하기에는 무리가 생겼습니다. 성벽높이가 당대로서도 대단히 높은 13m라는 점, 당시 도성 성벽에서 보여지는 삼중환호(취락의 주위에 일종의 도랑을 파서 돌리는 시설물이 삼중으로 되어 있다는 것), 수백점의 토기류가 다량 발견된 점등을 봐서 거대한 성이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성을 짓는데는 연인원 100만명 정도가 동원됐을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에 백제의 도성으로 쓰였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입니다.
이런 성을 만들었다면 초기 백제의 국력이 어느정도 되는지 짐작해 볼 수도 있겠습니다. 과거에는 초기의 한성백제에 대한 유적이 많이 발굴되지가 않아서, 초기 백제의 국력이 약해서 고이왕 대에 진입해서야 비로소 국력이 강해졌다고 여겼습니다. 하지만 이 유적의 발견으로 온조왕 대에도 강력한 왕권을 행사한 국력의 나라였다는 것을 비로소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풍납토성의 옛 모습 복원 모형
극적으로 이뤄진 풍납토성의 발굴 하지만...
선문대의 이형구 교수에 의해 극적으로 진행된 풍납토성의 발굴은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만약에 재건축 아파트 부지에 이형구 교수가 몰래 잠입해서 유적을 발굴하지 않았더라면 언제까지 묻혀있을 수 있었겠지요.
하지만 풍납토성 일대는 1997년 발굴이 이루어진 후로 전체의 절반도 발굴이 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현재 땅 속에 묻혀있는 풍납토성 위에 대규모 아파트 단지들이 들어서 있기 때문입니다. 왕성을 복원하려면 풍납토성 내의 주민 4만여 명을 전부 밖으로 이주시켜야 하는데 그런 대책이 너무나도 부족하지요.
현재 서울시는 23년간 5,700여억원의 보상비를 지급했습니다. 하지만 유구 보존지역 1~3권역 727,005㎡ 중 35.1%에 불과한 255,370㎡만 보상되었습니다. 문화재청과 국립문화재연구소, 송파구청은 이미 지층조사를 통해 핵심 시설지구, 백제 유적지 유력판단지구, 훼손지구 등으로 분류를 해놓고 있습니다. 핵심 시설지구는 특히 여태 발견되지 않은 궁궐지가 있을 것으로 추측되는 지역입니다.
사실은 이런 순서대로 사들여서 먼저 발굴하는게 당연한 절차인데 그저 지쳐 떨어져나가는 손절매하는 주민들을 상대로 보상을 해주는 방식을 고수하는 것이 발굴을 더디게 하는 것도 있을 것입니다. 결국 풍납토성의 발굴과 지역주민과의 토지보상 및 갈등 해소문제가 밀접하게 연관이 깊다는 것을 알수 있으며 이를 반드시 해결하는 것이 급선무입니다.
지역주민과의 갈등과 토지보상 문제
2000년 경당연립재건축아파트 예정지에 들어선 초기백제 유적 발굴 현장에서 재건축 부지에 대한 사업이 늦어지자 재건축 조합장을 비롯한 입주예정자 3명이 현장에 들어가서 굴삭기로 유구를 파괴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당시 자신들의 재산권 행사에 심하게 제한을 받아서 빚더미에 앉게 되었다며 호소를 하려는 목적도 있었겠지만, 그렇다고 유적지를 파괴한 것이 정당화 될 수는 없는 것이죠.
심지어 지역 주민들은 평소에 관심없던 역사에 그것도 지금은 많이 희미해진 학설에 기대어 터무니 없는 주장을 하기도 했습니다. 한성백제 왕성은 풍납토성이 아니라 하남시나 천안 등지가 진짜 위례성이며 풍납토성은 중국 상인들의 거류지라고 말입니다. 풍납토성은 역사학계가 만든 조작극이라고도 했었지요. 이미 언급한 대로 이미 풍납토성은 한성백제의 유적지로서 문화재적 가치가 이미 말할 수 없으며 더구나 중국상인들의 거류지라고 하더라도 문화재를 파괴해도 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기 때문에 더 위험한 사고 방식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
△이주대책 및 보상을 주장하는 주민들
하지만 그렇다고 무작정 지역 주민들을 나가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아무리 문화재가 소중하다고 하더라도 그 지역에 사는 주민들의 생계와 재산권을 보호해주어야 하는 것 역시 국가의 책무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지역주민들을 다 이주시키고 문화재 단지를 조성하기 위해서 국가가 그 비용을 부담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현재 풍납토성 일대에는 무려 2만세대의 가구가 들어서 있으며, 이 지역을 전부 매입하여 문화재를 발굴하고 역사 유적지를 조성하기 까지는 2조 5천억이라는 엄청난 비용이 든다고 합니다.
풍납토성 발굴비는 93년 이후 2013년까지 5천억원에 달한다고 합니다. 사실 보상이 빠르게 이루어져야 주민들도 어서 이주에 대한 방안을 찾기도 하고 해를 거듭할 수록 눈덩이처럼 커지는 보상비용을 줄일 수 있습니다. 현재 풍납토성에 대한 보상비는 한 해 전체 문화재 보수정비 예산 중 10%에 달합니다.
△풍납토성 내 복원 및 보상지역 일대
그리고 아까 언급한 것처럼 순서 없이, 지쳐서 떨어져 나가는 주민들을 대상으로만 보상을 해주는 방식을 택하고 있기 때문에 서울시나 정부가 중요 문화재 복원에 대한 의지가 약한 것이 아니냐는 비판에도 직면하고 있습니다.
2015년에 박원순 서울시장은 페이스북에 무슨 꿈에 백제왕이 나타났다면서 송파구 풍납토성 일대 토지보상을 해주면서 발굴을 추진하겠다는 글을 썼습니다. 어떤 이유에선지 그 글은 사라진 상태네요...ㅋㅋㅋ 아마 시장으로서 문제 인식은 하고 있는 듯합니다.
그리하여 서울시는 2020년까지 총 5천억원을 투입하여 풍납토성 주민들에게 보상을 해주기로 한답니다. 주민 보상 및 발굴에 드는 비용은 서울시와 문화재청이 3대 7의 비율로 분담하기로 했는데요, 서울시가 의지를 보였으니 문화재청과 주민들도 이견을 좁히고 발굴에 드는 비용을 마련하는 등의 작업을 서둘러야 할 것입니다. 검색을 해보니 2017년 풍납토성 토지 보상 계획 문서를 찾았는데 비공개 정보로 되어 있어서 아쉽게 볼 수 없었네요.
풍납토성의 세계문화유산 등재 가능성
언급한 풍납토성의 문화재적 가치와 그 의의를 살펴보면 세계문화유산의 등재 가능성도 충분히 엿볼 수 있습니다. 물론 풍납토성 일대의 유물, 유적이 얼마나 온전하게 발굴이 되고 정확한 복원이 이루어지느냐가 중요하겠네요. 특히 풍납토성은 그 크기가 국내 최대급의 판축 토성이기 때문에 일단 복원이 된다면 그 장엄함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서울시가 2020년까지 토지보상을 이루어 내겠다고 한 것도 세계문화유산의 등재와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현재 세계문화유산으로 백제역사유적지구가 이미 등재가 되어 있는데요, 공주시, 부여군, 익산시 지역의 백제 대표 유적지 8곳을 한데 묶어서 등재 한 것입니다. 여기에 지금 한성백제는 빠져있는데요, 바로 토지보상 문제가 얽혀있어서 복원이 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결론적으로 세계문화유산 등재 가능성은 지역 주민의 토지보상 문제에 달려있다는 말도 과언이 아니겠지요.
보완해야 할 우리나라의 문화재 보상 문제
풍납토성과 연장선 상에서 생각해보면 우리나라의 문화재 보상에는 문제가 좀 있다고 생각됩니다. 특히 문화재가 발굴이 되었을 경우 그 비용의 부담을 발굴자가 비용하는 규정이 있는데요, 사업면적 3만㎡ 미만인 소규모 발굴에만 국가나 지자체가 지원을 할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문화재청은 문화재가 발굴이 되었을 경우 발굴자가 비용을 부담하는 것이 국제적 원칙이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데요, 이러니 문화재의 개발에 회의적인 시각도 많이 나타나는 것이 사실입니다. 현재 있는 사람이 중요하지 그런 땅을 이제와 파서 무얼하느냐는 소리도 나오고 오히려 감추려고 훼손하거나 메워버리려다가 들켜서 처벌을 받는 경우도 다반사입니다. 발굴에 비용을 지원하는 것이 오히려 문화재를 보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또한 땅에서 발굴한 문화재가 있을 경우 전문가가 그 가치를 평가해서 보상금을 주는데요, 이럴 경우 보상금을 주는 것은 좋지만 발굴을 국가가 책임을 지고 문화재를 평가한 보상금에서 발굴 비용을 제하고 주는 것이 더 합리적이라고 봅니다. 어찌되었든 귀한 문화재를 발굴하는데 개인이 기여를 한 바를 인정해 주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작금의 풍납토성 관련 문제를 보며 문화재를 보존하려고 법으로도 지정해 둔 마당에 제대로 발굴해보자는 의지가 적다고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이런 문화재 복원도 다른 정책 못지 않게 중요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모두 포퓰리즘만 추구할 뿐 실속이 없다는 것이 현실인가요. 문화재에 대한 관심과 더불어 관련 정책들도 많이 나와주기를 하는 마음입니다.
해당 포스팅은 전공자의 지식은 아니며, 각종 기사와 사이트를 참조하여 작성한 서술에 불과하여 오류가 많을 수 있습니다. 유적 보존과 문화재에 대한 개인적인 의견을 개진하는 수단으로서 봐주시기를 바라며 그럼에도 혹 오류가 있다면 댓글을 남겨주시기 바랍니다.
[풍납토성과 문화재 보존에 대한 고찰]은 아래 사이트 및 기사에서 내용을 참고하여 작성하였습니다.
국가법령정보센터 - 매장문화재 보호 및 조사에 관한 법률 시행령
<백제 풍납토성> 2020년까지 5천억 투입해 주민 보상
박원순 서울시장 "백제왕이 꿈에 나타나... 풍납토성 백제 왕성 발굴 추진"
[풍납토성 미스터리]②풍납토성 복원 대체 어디까지... 인구 4만 아파트촌 다 없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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