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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석각천문도 "천상열차분야지도" 본문
<천상열차분야지도>
천상열차분야지도는 1687년에 제작 된 세계에서 두 번째로 오래 된 석각 천문도입니다. 그 뜻인 즉, 하늘의 모습인 천상을 차와 분야에 따라 벌려놓은 그림이라는 것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차'란 목성의 운행을 기준으로 설정한 적도대의 열두 구역을 의미하고, '분야'란 하늘의 별자리 구역을 열둘로 나누어 지상의 해당지역과 대응 시킨 것을 뜻한다고 합니다. 천상열차분야지도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문화유산이고 세계적인 보물입니다.
반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석각 천문도는 순우천문도로 1247년에 남송에서 만들어졌습니다. 천상열차분야지도의 특징은 1464개의 별들이 293개의 별자리를 이루며 특히 밝기에 따라 크기가 다르다는 것인데요, 반면에 순우천문도는 밝기에 따라 크기가 다르지 않고 모두 같게 별이 표시 되어 있다는 점에서 천상열차분야지도와 구별되는 부분입니다.
천상열차분야지도에 기록된 바에 의하면 고구려 천문도 사본을 기본으로 하였다고 합니다. 별자리를 관측한 위도를 확인해 본 결과 중앙부의 별자리는 한양의 위도인 38도에서 관측한 것으로, 바깥쪽의 별자리는 평양의 위도인 39도에서 관측한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고구려의 천문도는 천상열차분야지도뿐만 아니라 일본에도 영향을 주었는데, 기토라 고분 천문도에 그것이 나타납니다.
<순우 천문도의 사진: http://harg.kasi.re.kr/pro_plus/down/200511/200511_007-024.pdf>
1998년에 발견된 기토라 고분의 천장에는 천문도가 그려져 있었는데 이를 확인한 일본 전역이 흥분의 도가니에 빠져있었습니다. 기토라 고분은 8세기경에 형성되었는데 이 당시에 천문도를 그렸다는 것은 그 나라의 과학기술과 문명의 수준이 그만큼 높았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고분에 그려진 별자리를 분석한 결과, 관측자의 위도는 39~40도를 나타내어 평양 근처의 강역에서 관측한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이는 당시 고구려의 강역으로 고구려의 천문도가 일본에 영향을 준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 뒤로 일본은 해당 고분의 발굴을 중단했다는 일화도 있는데 사실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습니다....ㅎㅎ
<기토라 고분 천문도: http://blog.naver.com/sohoja?Redirect=Log&logNo=50085036283>
중국에서는 삼국사기에 중국에서 고구려로 천문도가 전해졌다는 기록으로 당나라 황제가 고구려에게 천문도를 하사 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당시의 적대국인 고구려에게 당나라가 지도를 하사했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며, 그 시기도 고구려가 멸망한지 24년이 지난 뒤라서 역시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이외에 천상열차분야지도의 특징으로는 지도의 아래에 설명을 곁들어 두었다는 것인데, 별자리 그림에 대한 설명, 28개의 별자리에 대한 거극도(하늘의 북극에서부터 잰 각도)와 천문도의 내력과 참여한 관리들의 명단이 아주 세세히 기록되어 있어서 그 가치를 더하고 있습니다.
이런 천문도를 조선초에 만들게 된 계기는 정치적인 상황과 연관이 싶습니다. 과거에는 민주국가가 아닌 왕정시대였고, 국가가 새로이 등장했던 시기에는 민심이 불안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하늘의 자손이라는 것을 징표로 하는 정통성 부여의 수단이 필요했을 것입니다. 또한 하늘은 과거 농경국가시대에는 가장 신성시 되는 영역중에 하나였습니다. 그러므로 하늘을 관측하여 천문도를 작성하는 것은 결코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며, 이를 조선의 건국자인 태조가 했다는 것을 보여주면서 그 정통성을 확고히 하기 위함이었던 것입니다.
천상열차분야지도는 조선왕조의 건국이념이 왕도정치의 구현에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정치적 상징물로 이야기 할 수도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한국인의 과학적 창의성이 담겨 있는 과학문화유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천문도의 제작과 더불어 조선 초기에는 다양한 과학유산이 발달하게 되었는데요, 지금 방영하고 있는 드라마 '장영실'을 보아도 조선 초에 얼마나 눈부신 과학적 성장을 이루었는지 짐작을 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과거에 제가 포스팅했던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에 숨겨진 비밀과 함께 보시면 좋을 것 같기도 하네요. ^^
해당 포스팅은 네이버 캐스트를 일부 참조하여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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