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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검은 꽃의 진실과 거짓에 대하여. 본문
역사소설 검은 꽃을 중심으로 허구성과 사실성을 분석한 것입니다.
책을 읽는데 참고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서 올립니다.^^
역사소설의 진실과 거짓 - 소설 검은 꽃을 중심으로
1. 서 론
(1) 역사소설의 개념
1970년대 이후로 한국은 고도의 경제적 성장과 더불어 시민의식과 역사의식의 성장으로 다양한 역사소설이 부각되기 시작한다. 역사소설(Historical novel)이란 통속적 전기류나 중세의 로맨스와 구분되는 근대적인 장편소설로서, 현재와 획기적으로 구분될 수 있는, 명백히 역사적 과거라는 의식하에 형상화한 소설이라고 한다. 박경리의 토지(1969-1994)를 기점으로 하여 그 이후에 황석영의 장길산, 조정래의 불놀이, 태백산맥 등 조선시대 후반즈음 부터를 무대로 하여 우리민족의 질곡을 다룬 역사소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하였다.
(2) 역사소설의 의의
역사소설의 목적은 세가지로 나눌 수 있다고 한다. 첫 번째로는 새로운 역사창조의 목적, 두 번째는 파란만장한 역사적 사건의 재현, 세 번째로는 현대의 과제를 추구하는 방편으로 역사적 사건을 재현하는 것이다. 여기서 세 번째는 작가의 상상력이 상대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보이며, 나머지 두가지는 역사적 사실을 상대적으로 중시하게 된다고 한다.
역사소설은 과거의 역사적 사실을 요구하지만 과거에 일어났던 일을 그대로 옮겨놓는 일을 요구하지는 않는다고 한다. 그러므로 역사소설에서는 역사의식을 토대로 하여 그 위에 문학적 상상력이 결합되어야 비로소 역사소설의 가치를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이유에서 문학과 역사는 반드시 일치할 필요는 없다. 그것에 덧붙여 역사소설에서 다루어지는 허구적인 사건이나 인물은 역사적 사실과 정합성을 띄게하여 역사성과 문학성이라는 특성을 동시에 띄게 되는 것이다. 보다 극단적으로, 역사소설은 역사가 아닌 소설이며, 사실의 왜곡이 있어서라도 문학적 진실이 구현되도록 그려낸다면 소설의 테두리 안에 있는 한 역사소설이 된다고 한다는 의견도 있다.
(3) 역사소설의 진실과 거짓
역사소설에서의 진실과 거짓은 바로 이런 소설의 허구성과 역사적 사실의 경계에 놓여있는 역사소설이라는 문학 장르에 있어서는 당연히 다루어지게 될 내용과도 같다. 사실 역사라고 하는 것은 대문자의 역사라고 하는, 소위 역사상 주류의 입장에서 서술되어 온 활자에 의존하여 구성된 것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역사소설에서 다루는 소재는 이런 대문자의 역사를 비롯하여 기록되지 못한 혹은 기록에서 배제된 소문자의 역사를 다룬 작품도 상당하다. 이런 소문자의 역사는 역사소설을 기점으로 하여 현대 매체에서도 다양한 상상력을 가미하여 새로운 문화컨텐츠를 창조하는데 큰 역할을 하는데, 역사소설가를 비롯한 많은 창작자들이 이런 소문자의 역사를 탐내는 이유는 어떤 드러나지 않은 사실에 대한 신비성을 비롯하여 이런 공백을 전통적인 방식과는 다른 식으로 구성할 수 있는 여지를 많이 남기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이런 소재를 다루어 역사속의 사건을 현대적 의미로 재해석하는 것이 역사소설가의 임무이기도 하고 존재 기반이 되기도 한다.
이번 보고서에서 다루어 볼 소설은 김영하의 『검은 꽃』이라는 작품이다. 소문자의 역사를 다룬 작품으로서 역사의 상당부분의 공백을 작가의 상상력으로 메워 낸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 역사소설 중에서도 대단히 최근에 쓰여진 이 책을 통하여 역사소설에서 드러난 사실적인 내용과 허구적 내용을 보고, 어떤 방식으로 허구적인 내용을 채워가는 것인지, 사실과 비교하여 어떤 점을 부각시키려고 하였는지 등을 알아 볼 수 있을 것이다.
2. 본 론
(1) 소설 『검은 꽃』의 개요
『검은 꽃』은 소설가 김영하가 2003년에 발표한 작품으로 1905년 멕시코로 떠난 한국인들의 이민사를 그려냈으며, 2004년 동인문학상 수상작이다. 1904년 일본인 중개업자들에 속아 멕시코 농장으로 팔려나가 완전히 잊혀져버린 조선인 열한 명의 삶을 추적하여 수난으로 점철된 소수의 민족사를 다룬 소설이다.
소설은 총 3부로 나뉘어진다. 줄거리는 제1부에서 멕시코 팔려간 조선인들이 멕시코 농장주들의 억압 속에서 고통의 삶을 살아가는 과정을 그렸고, 제2부에서 멕시코 혁명이 일어나자 혁명의 소용돌이 속에 새로운 역사를 만나게 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리고 제3부는 신대한의 건국과 전개를 다루고 있다. 조선인들은 새로운 세계에 대한 막연한 기대를 안고 멕시코 행 기선에 승선하지만 이들은 멕시코에 도착하면서 엄청난 고난의 삶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에네켄(용설란과의 커다란 식물로, 배를 부두에 묶을 때 쓰는 밧줄을 만드는 재료) 농장의 노예가 된 그들은 고국으로 돌아가지도 못한 채 멕시코 전역을 떠도는 신세로 전락한다.
하지만 이들은 무지와 멸시 속에서도 언젠가는 귀국할 수 있다는 꿈을 버리지 못한다. 이들은 거칠고 낯선 땅에서 새로운 삶의 터전을 닦으려 하지만 멕시코에 불어닥친 혁명과 내전의 바람에 휩쓸린다. 그리고 이웃나라 과테말라의 정변에 끌려들어가 전장을 전전하기도 한다. 이 전란의 땅에서 이들은 마지막으로 ‘신대한’을 국호로 내건 소국을 세우려 한다. 하지만 정부의 소탕작전에 의해 대부분 전사하고 만다.
김영하는 어느 이민사 연구자의 잡담을 몇다리 건너 전해들은 계기로 이 소설을 쓰게 되었다고 한다. 본격적인 집필에 앞서 관련 자료들을 조사하였는데, 그가 조사한 주요 자료는 이자경의 『한국인 멕시코 이민사』, 『백종국의 멕시코 혁명사』, 카를로스 푸엔테스의 『라틴 아메리카의 역사』, 서인한의 『대한제국의 군사제도』, 웨인 패터슨의 『The Isle』 등이라고 한다. 이 소설의 전반적인 서사는 이자경의 『한국인 멕시코 이민사』에서 수용하였으며, 백종국의 『멕시코 혁명사』는 후반부 서사의 원천 자료로 쓰였다.
사실 멕시코 혁명도 하나의 역사적 사실이지만 한국인의 입장에서 바라본 멕시코 혁명은 주변부의 역사일 수 밖에 없으며, 근대 조선의 역사에서 멕시코로 떠난 한국의 이민자는 잊혀진 인물들이며, 누락된 역사라고 할 수 있다. 결국 김영하는 근대 조선의 역사에서 잊혀진 소문자의 역사를 작가의 상상력을 동원한 허구적 사건으로 메워 한편의 역사소설을 만들어 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관련 논문과 역사서 등을 참조하여, 김영하의 소설 『검은 꽃』이 어떤 사실과 거짓으로 구성이 되었는지 분석을 해보았다.
(2) 소설 『검은 꽃』에 드러나는 진실과 거짓
『검은 꽃』은 기존의 역사소설이 추구하는 과거 시대의 사회상을 충실하게 재현한다거나 역사적 인물에 대한 낭만적인 영웅화와는 좀 다른 면을 보이고 있다. 특히 역사소설이라는 틀과는 조금 거리가 먼 상상을 통한 재창조의 요소가 많은 편이다. 소설가 김영하는 이 소설을 쓰게 된 계기가 몇 다리를 건너 전해진 이민사 연구자의 잡담에서 시작되었다고 하였으니 재창조의 요소가 많은 것을 짐작해 볼 수 있다. 해당 소설의 사실이 드러나는 부분과 허구로 드러나는 부분을 서로 나누어 보고 소설에 어떤 효과를 주는지 알아보았다.
가. 소설에서 드러나는 사실성
이 소설은 98년도에 이자경이 쓴 『한국인 멕시코 이민사』를 바탕으로 쓰여졌으며 1부, 2부의 전반적인 흐름을 모두 위의 책에서 끌어와서 서술하고 있다. 소설의 후반부에 해당되는 3부는 2000년에 백종국이 쓴 ‘멕시코 혁명사’라는 책을 참조하여 썼다.
멕시코에 갈 이민자를 모집하는 과정부터 게재한 신문, 탑승 인원수, 탑승일자, 소요시간 등을 사실과 동일하게 맞추어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다.
그리고 에네켄 수확 농장의 집단파업사건, 멕시코의 메리다 지방회의 설립, 숭무학교의 설립, 과테말라 용병사건과 멕시코의 내전, 혁명사건, 한국인의 과테말라 혁명참전 등 그 지역에서 있었던 한인 및 멕시코인들의 굵직한 사건 역시 해당 연도와 있었던 일들을 비교적 사실적으로 거의 빠짐없이 서술하였다. 다음은 ‘김영하의 검은 꽃’의 사실적 측면을 이자경의 ‘한국인 멕시코 이민사’와 비교한 부분이다.
국내에서 멕시코로 떠난 동포들에 대한 관심이 본격화된 것은 유카탄 메리다에 거주하는 중국인 허훼이의 편지가 서울에 도착하면서부터였다. 한인들이 인천을 떠난 지 4개월이 못돼 황성신문(1905.7.29.)에 두 꼭지의 현지 참상소식이 게재되었다.
2면에는 상동교회 만엘루 청년회 서기 정순만의 기고 “국민이 진위노예(盡爲奴隸)어ᄂᆞᆯ수능구호(誰能救乎)아”라는 글이 실렸고 3면에는 허훼이의 편지내용을 소개한 샌프란시스코의 중국계신문 <문흥일보> 기사가 실렸다.
- 이자경 『한국인 멕시코 이민사』 111쪽
메리다에 살고 있던 중국인 허훼이는 메리다 시내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조선인 이민자들과 조우했다. 그는 그때의 충격을 적어 샌프란시스코에서 발간되는 중국계 신문인 문홍일보에 보냈다. 문홍일보에 실린 글을 읽은 미국 유학생 조영순, 신정환은 서울의 기독교청년회 앞으로 급히 편지를 날렸다. 청년회의 젊은 전도사 정선규는 이 내용을 다시 정리하여 황성신문 앞으로 보냈다. “국민이 노예가 되었으니 어찌 이들을 구할것이랴”라는 제호의 기사가 나간 것은 1905년 7월 29일 이었다. 이 복잡한 과정을 통해 비로소 유카탄 채무노예들의 실상이 대한제국에 알려진 것이다.
- 김영하 『검은 꽃』 154-155쪽
11월 2일 : 목요일, 오후 4시 도쿄 출발. 시나가와 역에서 한치유와 동행. 오후 6시 고베행 기차에 탑승, 스티븐스가 기차에 올라와 배웅함. 3일 오전 9시 고베 도착, 4일 새벽 5시 30분 시모노세키 도착, 5일 오전 6시 후시마마루에 승선, 6일 새벽 부산 도착, 오후 11시 30분 서울 도착.
동월 8일 : 황제폐하 배알. 황제는 얼마나 멀리 갔느냐. 현재 거주지가 어디냐 등을 물을 뿐 멕시코는 고사하고 하와이의 한인들에 대한 이야기도 별로 묻지 않았음.
- 이자경 『한국인 멕시코 이민사』 140쪽
11월 2일, 윤치호는 도쿄를 떠났다. 11월 6일 부산항에 당도, 그해 1월 1일 개통한 경부선 기차를 타고 서울로 향해 자정 직전 서울에 도착했다. 11월 8일, 황제를 배알했다. 황제는, 그에게 얼마나 멀리 다녀왔느냐, 현재 어디에 살고 있느냐, 힘없이 물었다. 멕시코는 고사하고 하와이 이야기도 꺼내지 않았다.
- 김영하 『검은 꽃』 211쪽
이렇듯 소설속에서 실제로 있었던 사건을 소설의 틀에 맞추어 역사적 사실을 기술하는 부분은 소설 내 여러부분에 존재한다. 또한 한인 이민자의 채무노예제의 실상이나, 멕시코 혁명의 발발 계기나 진행양상과 관련된 소설의 전반적인 얼개를 비교적 사실과 맞추어 진행시키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많은 부분이 실제 역사와 소설에서 서술한 방식이 다를 뿐 거의 실제로 있는 그대로의 내용을 기술하고 있다. 다만 소설에서는 극적 재현을 높이고 소설의 전반적인 틀에 맞추기 위하여 문체를 변형하고 문장 구조를 재배열하는 정도의 각색이 있을 뿐이다.
소설가는 왜 역사적으로 의미가 있다고 여겨지는 굵직한 사건이나, 멕시코 한국인 이민자들의 생활을 기술한 내용의 흐름을 비교적 사실적으로 기술한 것인지, 그것은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분석해보았다.
ㄱ. 역사소설을 표방한 것에 대하여 신뢰감을 부여한다.
아무리 소설이 허구성을 지닌다고 하더라도 소설 스스로가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쓴 역사소설임을 밝히고 있다면, 이는 읽는 독자에게 나름의 신뢰성을 부여해야 한다. 역사소설은 그 의미에 역사적 사실의 재현으로서의 ‘역사’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ㄴ. 독자들이 소설을 읽을 때 몰입도를 높여준다.
역사책에서 한줄이나마 읽었던 역사적 사실이 소설속에 가미된다면, 뭔가 그 뒤에 이어지는 허구적인 내용도 사실과 이어져 소설 전반에 사실감을 부여하게 되고, 독자가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역사적인 사실에 대한 인식과 작가의 이야기 전개와 표현력이 어우러져 소설속에서의 몰입도를 높여준다.(역사적 사실과의 정합성)
나. 소설에서 드러나는 허구성
소설 『검은 꽃』은 서론 부분에서도 언급하였듯이, 한국의 역사의 주류를 다룬 것이 아닌 비주류를 다루었기 때문에, 사료가 말해주지 않는 역사의 공백을 메우는 이른바 소급추정의 영역이 상당히 많은 소설이다. 또한 거론되는 역사적 인물이 가상적 인물로 대체되었다. 이런 점이 역사적 사료로서 기술 된 『한국인 멕시코 이민사』와 다른 점 두가지이다. 하지만 이런 부분은 역사소설과 사료의 기본적인 차이점에 불과하다. 초점을 맞추어야 할 부분은 소설가가 역사적 사실과 다른면 또는 존재하지 않는 면을 부각시키는 부분이 어떤 부분인가에 관한 것이다. 왜냐하면 이런 부분이 작가가 소설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를 잘 드러내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이런 허구성이 독자에게 미치는 부분도 파악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검은 꽃』에서 등장하는 주요인물들은 물론 가상의 인물이다. 가상의 인물들 중에서도 역사적 맥락을 정통적으로 따라가는 인물들이 있는가하면, 뭔가 사서에는 언급되지 않은 독특한 의미를 띄고 있는 인물들도 있다. 전자에 해당하는 인물로는 소설에서 통역관으로 등장하는 권용준이다. 『한국인 멕시코 이민사』에 등장하는 야스체 농장의 악질 통역 김진태를 각색한 것을 알 수 있다. 사료에서 등장하는 김진태의 만행과는 다소 다르지만, 소설에서의 권용준이 한인 이민자들과 대립하는 과정에서 농장주보다도 더 악랄하게 이민자들을 착취하는 과정은 사실과 유사하다. 또한 대한인국민회 메리다지방회와 숭무학교를 설립한 이근영은 소설속에서 대한제국의 군인출신으로 묘사된 조장윤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한다. 조장윤은 소설의 역사적 사건에 모두 등장하며, 사실성을 부각시키는 동시에 스토리를 후방에서 이끌어 나가는 역할을 하고 있다. 후자에 해당하는 인물들이 해당 소설에서는 거의 대부분이지만, 그 중에서도 부각이 되는 인물 두 명을 다루어 보았다.
ㄱ. 김이정
김이정은 고아로 떠돌다 일포드 호에 승선해 비로소 이름을 얻은 인물이다. 그의 생활 상의 전반적인 흐름은 역사적 사실에 기인한 정도로 나아가고 있다. 멕시코행 배에 탑승하고 항해하는 과정이나, 에네켄 수확 농장에서의 고단한 삶 등을 김이정과 주변인물을 중심으로 하여 서술하고 있다.
첫 번째로 드러나는 허구적 특징은 중간중간에 등장하는 김이정과 조선의 양반가문의 딸 이연수와의 로맨스이다. 이를 통해 그들의 계급은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 멕시코에서의 이루어 질 수 없는 사랑을 역사적 사실과 연관시켜 비극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두 번째는 소설의 막바지인 제3부에서 등장하는 내용으로 김이정이 후일 과테말라의 혁명군 중의 일부로 참여하여, 파란만장한 최후를 맞이하는 내용이다. 한국인 40여명은 띠깔이라는 마야문명의 유적에 도달한 후 혁명군으로부터 버림받게 되고, 오지도 가지도 못하게 된 그들은 김이정을 중심으로 작은 나라를 세우고, 마야인들과 연합하여 잠깐이지만 평화로운 삶을 이루게 된다. 여기서는 신대한이라는 작은 나라를 세운 행위를 통해 조선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끝까지 지키려하는 민족적 의지를 보여주고 있으며, 외국인 이민자로서 비참한 삶의 연속을 거듭하고 남의 나라 혁명에 참여하여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기까지의 과정에서의 비극성을 더하기 위하여 이런 요소를 넣은 것으로 여겨진다.
ㄴ. 이종도
이종도는 대한제국의 황족이다. 대한제국의 멸망을 앞두고 신문물을 배우러 가기 위한 목적으로 가족들을 데리고 채무노예가 되는 멕시코행 이민선을 타고 떠난다. 사료와 관련이 없는 인물 중에 가장 부각되는 인물인 이종도는 전형적인 조선양반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민선에 탑승해서도 자신들을 올곧게 대우해줄 지체높은 사람만 찾으며, 사대부의 신분에 걸맞는 대접을 요구하였으며, 에네켄 농장에 가서도 채무노예로서의 삶을 거부하면서, 자식들과 아내를 농장에 내보내고 자신은 아무일도 하지 않는 무능력한 모습을 보인다. 그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집에 틀어박혀 아침이면 서쪽을 향해 절하며 새로운 국가의 기틀을 짜는 방안에 대한 글을 쓴다. 그의 무능함은 결말에서 더 부각된다.
“이종도는 1919년 조선에서 고종이 승하한 후 거국적인 만세운동이 벌어졌다는 소식을 전해듣고는 엉뚱하게도 왕조의 복귀가 멀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그는 피를 쏟으며 집필에 박차를 가하였다. 그러나 원고의 완성을 채 보지 못하고 뇌졸중으로 사망했다. 이진우는 아버지의 유품을 모두 불태웠다.”
소설가는 이종도를 통하여 조선 후기 양반의 모습을 적나라하고도, 다소 과장되는 모습으로 표현하였다. 머나먼 타국의 고단한 삶에서도 현실을 부정하고, 자신의 가족들까지 비참한 삶으로 몰아넣은 후 무책임하게 집에만 틀어박혀서 엉뚱하게 새로운 국가의 기틀을 짜는 책이나 쓰는 양반의 권위의식을 다양한 모습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의 아들 이진우가 아버지의 유품을 모두 불태웠다는 말을 통하여 이런 행위가 얼마나 허망한 일이었는지를 보여준다. 이렇게 자아상과 현실간의 현격한 격차를 인정하지 못하는 이종도의 모습은 가장 희극적인 인물인 동시에 가장 비극적인 인물로 독자들의 탄식을 자아내게 한다.
이외에도 불가피하게 십자가와 신부의 옷을 던지고 멕시코행 배에 탑승한 박광수 신부, 부둣가 좀도둑으로 연명하던 최선길, 양반가문의 딸이지만 강인한 생활력과 신시대 여성의 면모를 보여주지만, 여자로서 감당하기 어려운 가혹한 삶을 살게 되는 이연수, 궁궐의 내시출신 김옥선과 종교의 차이에서 갈등하다 비참한 삶을 맞이하게 되는 박수무당 등 가상의 인물들을 다수 만들어내어, 기존의 공동체로부터 벗어나 이들 앞에 놓여진 전혀 다른 외부와의 만남에서의 힘겨운 삶과 연약하지만 질기게 살아나가는 한국인의 민족성을 보다 사실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역사소설에 있어서 사실성은 어떤 역사소설이든 공통적인 특징을 갖는 것이지만, 허구성은 소설 자체의 기본적인 요소이다. 역사소설에서 허구적인 부분은 사실적인 측면과 결부되어 소설이 더욱 사실처럼 보이도록 만들거나, 또는 소설가의 그 역사에 대해 어떤 인식을 지니고 있는지, 그가 강조하는 요소가 무엇인지를 잘 이야기해준다.
다음은 숭무학교의 설립과 관련된 조장윤의 내면의식을 다룬 부분이다.
“그때부터 조장윤은 스스로 정립한 숭무의 사상을 주변에 전파하기 시작했다. 그가 유카탄의 한 농장에서 상상해낸 새로운 국가의 모습은, 1960년대 박정희 소장에 의해 현실화될 군부정권이나 아랍 세력과 쉼없이 전쟁을 지속하는 이스라엘의 형태에 가까웠다. 동시대로는 중국에서 출현한 위안 스카이 등의 군벌정치를 닮아있었다. 나라는 강력한 카리스마를 가진 군인 또는 전직 군인에 의해 통치되고, 자주적 군사력을 기르는 데 온 힘을 쏟는다. 개병제 아래에서 국민은 모두 국방의 의무를 진다. 언론(그는 상소나 올리는 백면서생들을 떠올리고 있었다.)은 적절한 제한을 받아야 한다. 우선은 일본과 러시아로 대표되는 주변의 강대국들을 격퇴하는데 온 힘을 집중해야 한다. 외교에나 의존하던 고종의 무리들은 순진하기 짝이 없었다.”
이렇게 등장인물의 내면의식을 편집자적 논평식으로 만들어 내어, 자신만의 역사에 대한 해석을 제시하여, 소설속에서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더욱 더 잘 나타내 주고 있다.
3. 결 론
역사소설은 한마디로 역사와 소설의 공존이다. 또한 역사인 듯 하면서 소설이며, 소설인 듯 하면서 역사인 것이 역사소설이다. 김영하는 소설 『검은 꽃』에서, 드러나지 않은 한국의 멕시코 이민사를 재조명시키기 위하여 그들의 경로를 추적하며, 땀과 피로 얼룩진 고단한, 그러나 희미한 역사의 장을 나타내고 있다. 역사의 희미한 부분을 밝혀주는 것이 바로 역사소설, 특히 소문자로서의 역사를 다루는 소설이 가지게 되는 주요한 역할일 것이다. 거기에 덧붙여 조선 정부의 무능함이라는 작가의 인식과 수난으로 점철된 민족사를 역사를 기반으로 창조된 다양한 사건들을 통하여 보다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본론에서도 언급하였지만, 역사소설에서의 진실과 거짓은 각자의 기능을 하고 있다. 진실은 거짓을 위하여 거짓은 진실을 위한 기능을 한다. 특히 거짓은 진실과 결합하였을 때 아주 거짓만은 아니게 되는 것이다. 해당 소설과 같은 경우는 거짓의 비중이 다소 높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소설이 비주류의 역사를 다루기도 하였으니, 사실의 연결을 봉합할 거짓의 요소가 보다 많이 필요했을 것이다. 특히나 이런 비주류의 역사를 다룬 소설의 경우에서 허구성이라는 요소가 역사와 소설이라는 두가지 측면에서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인지 보다 확실히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여겨진다.
참고문헌
단행본
김영하, 『검은 꽃』, 문학동네, 2010
권영민, 『한국현대문학대사전』, 서울대학교출판부, 2004
이자경, 『한국인 멕시코 이민사』, 지식산업사, 1998
논 문
김병길, 「역사소설, 창기의 경계를 횡단하다-김영하의 역사소설 ‘검은꽃’을 중심으로」, 국제비교한국학회 <Comparative Korean Studies> 제20권 2호, 2012, 417~440쪽.
김재국, 「애국계몽기의 역사소설 고찰 – 단재 작품을 중심으로」, 대중서사학회, 대중서사연구 제7권 제1호, 2002.12, 65~91쪽.
김현주, 「영웅주의적 역사소설에 나타난 역사의식 - 김주영의 ‘객주’연구」, 대중서사학회, 대중서사연구 제7권 제1호, 2002.12, 193~226쪽.
조수학, 「역사와 역사소설」, 대동한문학회, 대동한문학 제10집, 1998.12, 97~119쪽.
한혜원, 「전자문학에 나타난 역사의 재구성」, 현대문학이론학회, 현대문학이론연구 48권0호, 2012, 217~236쪽.
신문기사
이경재, “<2006 문화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문학평론> 바다를 건너가는 두가지 방정식”, 문화일보, 2006.01.02. 인터넷 신문기사 발췌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21&aid=0000134160)
임형도, “[문학리뷰]김영하‘검은 꽃’조선인 멕시코 이민사”, 주간경향, 2003.08.29. 인터넷 신문기사 발췌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14&oid=033&aid=0000002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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