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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학&문학 이야기

호오 죽음에서 삶으로의 회귀?

김창식 2012. 9. 7.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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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릎 위에 잡지를 내려놓고도 나는 한동안 멍하니 변기에 앉아 있다. 뒤를 닦기도 귀찮고, 물을 내리기도 귀찮다. 별 생각도 없이, 나는 자위를 시작한다. 다리를 벌리고 선 잡지의 여자 때문이 아니다. 말하자면 나는, 오히려 천장을 보고 있다. 형광등... 그렇다, 형광등이 보인다. 나는 흔든다. 나를... 흔든다. 회화를 그리거나 자수를 놓듯, 그리고 나는 사정을 한다. 그냥, 그뿐이다.


어떤, 이상한 나라의 지도 같은 얼룩이 흰 피부의 여자와, 모택동의 얼굴을 덮고 있다. 누르스름한, 혹은 푸르스름한 정액의 반도半道, 정충의 섬들을 바라보다 떡이나 지겠지, 나는 잡지를 덮어버린다. 물을 내리고 뒤를 닦는다. 소용돌이치며 사라지는 진회색의 물을 나는 말없이 지켜본다. 지끈, 머리가 아프다.


...


자신도 모르게 남자는 입술을 깨문다. 에이 씨발, 그는 넥타이를 푼다. 의자를 내려서고 쥐가 온 듯한 왼쪽 다리를 질질 끌며 굳게 잠근 통로의 걸쇠를 푼다. 허약한, 무방비 상태의 생명을 공격하는 그 느낌을 그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끝끝내 대면한 자신의 진짜 이유 앞에서 그는 갑자기 이성을 잃는다. 에이씨, 그는 어린아이처럼 울기 시작한다. 계단은 가파르고, 낡은 난간은 군데군데 기둥이 빠져 있다. 남자가 사라지는 모습을 보고 그녀는 하마터면 정신을 잃을 뻔한다. 그녀는 다시 어금니를 깨문다. 아이를, 자신의 잘못이 아닌 아이를 붕대 위에 내려 놓고 그녀는 도망치기 시작한다. 그곳으로 가는 이유를 이곳을 벗어나려는 진짜 이유를


그들은 누구도 알지 못한다. 어느새 그는 여자가 있던 옥상으로 올라와 있다. 여자는 보이지 않는다. 대신 그는 널브러진 붕대 위에 놓여 있는 작은 인간을 볼 수 있었다. 마비된 다리를 질질 끌며 그는 아이의 곁으로 다가선다. 어수선한 골목이 바로 아랜데 순간 고요하다고, 그는 느낀다. 이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그는 알지 못한다. 하다못해 그는 담배를 꺼내 문다. 아주 긴 연기가


아주 느린 바람 속에 너그러이 흩어진다. 그는 갑자기 짜증이 인다. 이 상황이, 허벅지의 통증이 짜증스럽다. 재를 털며 그는 자신이 서있던 건너편 상가의 옥상을 바라본다. 축 늘어져 바람에 흔들리는 그곳의 문을 쳐다본다. 어딘가 전화를 걸고 누군가 올 때쯤 떠나자, 생각을 한다. 주머니를 만져본다. 전화기가 없다. 잡히지 않는다. 바람과 전파가 전부인 옥상의 한켠에서 그는 급속도로 냉정을 되찾는다. 알게 뭐야, 하고


그는 아이를 내려다본다. 아이가 운다. 울고, 숨을 쉰다. 주섬주섬 붕대를 모아 그는 일단 아이의 몸을 덮어준다. 그러면 안 되는데, 그는 잠시 아이를 안아본다. 엉거주춤 무릎을 꿇었다가, 매달린 태반을 어쩌지 못해 통째로 안아 올린다. 그의 품에서 아이는 울다, 훌쩍인다. 바닥의 콘크리트보다도 무뚝뚝한 인간이지만, 적어도 콘크리트보다는 따뜻한 인간이기 때문이다. 씨발, 하고 그는 중얼거린다. 그 외의 다른 말은 딱히 떠오르지도 않는 아침이다. 그는 계속 그러고 있을뿐이다. 다른 아무것도 해줄 생각이 없으면서


하물며 그 인간은

울지 말라고 속삭인다.

잠시

아이는 울음을 그친다.

쥐가 난 허벅지는 

또 잠시

콘크리트처럼 견고해진다. 


출처 : 아침의 문, 박민규, 문학사상, 2010

(제34회 이상문학상 대상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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