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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이야기

미두계의 패왕 반복창

김창식 2012. 7. 16. 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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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일제시대 미두시장을 평정하였던 '미두왕' 반복창을 알고 있는가?

MBC 신기한 TV 서프라이즈에도 소개되었던 반복창의 일생은 위키백과에도 저술이 되어있다.

지금으로 부터 100년 가까이된 이야기이나 현대인들에게도 깊이 와닿는 이야기일수 있는 만큼 미두왕 반복창의 일생을 간추리고 나름 정리하여 소개해보고자 한다.

 

투자라고 하는 것이 어찌 현대에만 있을 수 있겠는가. 금융의 역사는 산업혁명이후 급속히 발전하여 어느새 일제시대에 다다랐으니, 그 당시 조선은 일제의 식민지였다. 부족한 일본의 식량을 메꾸기 위해서 조선땅에서 부지런히 쌀을 수탈해서 일본으로 날랐으니, 쌀이 귀하게 되었는데.. 그리하여 쌀의 시세를 책정하고 거래하기 위한 시장이 만들어졌으니, 그것이 미두시장이다. 이 쌀의 시세는 날씨, 거래량, 농사의 풍흉 등에 영향을 많이 받았었는데 그래도 당시의 일본은 조선이 최대의 쌀 수입국이었기 때문에, 이 인천에 만들어진 미두시장이 일본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고 하더라.


이 당시 반복창의 나이는 고작 12살. 그러나 복창은 그 나이에 미두시장에서 명성을 날리고 있었던 일본인 아라키의 집에 들어갔다. 아라키는 1886년 인천의 미두시장이 열리자 미두 중매점을 차려 거래를 대행하거나, 직접 사고 팔아 부를 축적하였다. 아카리의 하인으로 일하던 복창은 아카리의 수완을 조금씩 배워가 언젠가 자신이 최고의 미두꾼이 되리라는 포부를 갖게 되었다. 기어이 반복창은 19세의 나이에 중매점의 시장대리인이 되었는데, 이 복창이 승진을 거듭하여 시장 대리인이 된지 4년 후 1차 세계대전이 끝났던 것이다.

 

1차 세계대전의 승전국인 일본은 이런저런 여파로 대호황을 누리게 되니, 이로 인해 소득이 늘어나게 되고 쌀소비도 늘게 되었다. 더구나 가을 흉년으로 쌀값이 폭등하게 되자, 미두 시장의 시세가 들썩이기 시작했다. 이 틈을 놓치지 않고 미두꾼들이 인천 미두시장으로 몰려드니, 여기서 아라키가 슬쩍 나서서 쌀값이 폭등할 것을 예상하고 투기적으로 매수를 했다.

 

그 당시 미두시장의 쌀의 최소 거래량이 100석이었는데 하루 시세가 10원씩만 오르내려도 오늘날 시세로 하루에 1억씩의 이익 또는 손해가 났을 정도로 가격의 변동폭이 컸던 것이다. 사실 미두 시장에서 쌀을 사거나 팔기 위해서는 중매점에서 미두 통장을 개설하여 10%의 증거금을 예치해야 했기에 결국 최소 거래량은 100석을 살경우 1000원이 아닌 100원만 있으면 되는 것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 당시 돈 100원이면 평범한 월급쟁이 두세달치의 월급에 해당하니 결코 적은 돈은 아니었던 것. 이 미두시장에는 결코 쌀이 오가지 않으니 도무지 쌀을 정말로 먹기 위해서 사는 사람은 없고 오직 돈을 벌기 위한 사람들만 몰려 있었다. 그 중에서도 아라키는 돈 벌기에 지독히 혈안이 되어있으니, 투기에 투기를 거듭하여 부지런히 쌀을 사모으는데, 그 와중에도 쌀값이 오르질 않으니, 어느덧 매수한 쌀이 무려 10만석 그 당시 거의 200만원에 이르는 양이며 혼자서 수만년은 먹고 살수 있는 양이었다. 결국 아라키는 쌀값이 올랐다는 거짓전보 작전을 꾀는 최후의 꼼수를 펼쳐보지만, 그도 여지 없이 실패로 끝나면서 결국 일본으로 줄행랑을 치고 말았다.

 

아 그 와중에 반복창은 이 한심한 일본인의 하인으로서 숙박비를 제하고 월급 6원을 받았던 것이다. 하지만 복창은 이마저도 악착같이 모으며, 언젠가 이 미두시장을 평정하리라 굳게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여하튼 아라키가 달아났으니, 복창은 실업자가 되고 말았는데, 아니 이 인천의 미두시장이 자본금이 5만원이 채 되지 않았고, 달아난 아라키의 180만원의 부도금을 막지 못하고 영업 정지를 당해버리니, 복창은 자신의 직장도 없어지고 꿈을 키우던 미두 시장도 없어지고 만 것이다.

 

그런데 이 일본놈들이 무슨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인지, 쌀의 공정시세를 정한답시고 다시 영업정지 석달만에 미두시장을 열어버렸다. 그러니 이 미두꾼들이 가만있겠는가, 전국에서 수많은 미두꾼들이 인천으로 꾸역꾸역 모여드니 이중에 갓 소년티를 벗은 스무살 청년 반복창이 있었던 것이다.

 

반복창은 이제 아라키의 하인이 아닌 미두꾼으로 변신하였다. 그가 일하면서 차곡차곡 쌓아온 미두시장에 대한 지식과 악착같이 모은 500원 가량의 돈으로 천천히 미두시장을 평정하게 되는데, 이 위험하기 짝이 없는 미두시장에서 그는 천길 낭떠러지에서 줄타기하듯이 거의 기인에 가까운 실력으로 연전 연승의 신화를 일구어냈다.

 

1년도 채 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어느새 복창의 재산은 40만원(현 시세 400억원)에 육박하게 되고, 이제 스물한 살에 불과한 조선청년이 어느새 일본에 까지 이름을 떨치게 되니 미두시장에서는 그를 모르는 사람이 없었으며, 그가 중매점에 나타났다는 소식을 들으면 미두시세가 오르내리고 일본 오사카 미두시장의 시세마저 출렁거렸다.

 

반복창은 이 돈으로 인천 외리 바다가 보이는 경동사거리 동쪽 100미터 가량의 위치에 있는 명당자리에 400평의 집터를 사고 20만원을 들여 조선에서 가장 크고 화려한 서양식 저택을 지을 계획 세웠다. 땅을 사고 집 지을 준비만 하는데 10만원이 드는 초호화 저택이었다. 호화스러운 저택이 있으니, 이제 자신의 짝을 찾아야 했던 미두계의 패왕 반복창이는 조선 최고의 미인이라 손꼽히던 김후동을 찾아가게 된다. 이 김후동이란 여자 여고보를 졸업한 신여성이자 미의 여신으로 추앙받을만큼 명성이 자자했다고 한다.

 

결국 1921년 4월, 반복창은 김후동과 조선 호텔에서 초호화 결혼식을 올렸는데, 이 결혼식이 얼마나 성대했는지, 신문이란 신문에는 다나오게 되었다. 그당시 3등석도 엄두가 나지 않던 열차의 2등석 특별열차를 그것도 조선인이 통째로 대절을 하고 그 당시 서울 시내에 돌아다니던 자동차의 3분의 1을 동원한 특급 결혼식이었다.


하지만 인생은 언제나 순탄하게만 흘러가는 법은 없다. 점점 반복창의 예측이 서서히 빗나가기 시작하더니, 결국에는 아라키와 똑같은 길을 걷게 되었던 것이다. 이 세기의 미녀 김후동과 결혼한지 2년이 되지 않아 있는 돈을 다까먹고 생계마저 어려워지자, 결국 투기적인 거래를 하게 되는데, 이것마저 성공하지 못하고 결국 2년만에 초기에 있었던 500원 마저 잃고 전 재산을 탕진하고 만 것이다. 아내인 김후동은 어떻게 되었냐고? 반복창과 살던 3년동안 아이는 꾸준히 낳았는지 애를 셋이나 데리고 사는데, 아니 이 복창이 돈을 다 까먹고 말았으니, '남편보다 아이들이 더 소중하고 사랑스럽다'고 말한 바로 그 이듬해 반복창에게 세 아이를 모두 맡기고 이혼해버린 것이다.


그러나 반복창에게는 이 미두만이 자신에게 명성을, 최고의 미인을, 아이들을, 집을, 어마어마한 돈을 마련해준 인생의 전부였으니, 이 미두가 모든 것을 빼앗아 갔을지언정 아직도 그 미련을 버리지 못하였다. 미두시장의 최소 거래량인 100석을 거래할 돈조차 없던 복창은 합백이라고 불리는 사설 미두시장을 찾게 되었으나 이 신세라고 예전보다 나으리라는 보장은 없었다. 일파만파로 이제 서른살이 된 그에게 중풍까지 찾아오게 되니 반신불수에 머리까지 돌아버리고 만 것이다. 그런데도 멍청한 녀석이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미두시장을 지팡이를 짚고 겨우 어슬렁 어슬렁 거리며 '쌀값이 오른다','쌀값이 떨어진다' 혼자서 중얼 중얼거리는 것이었다.


사람이 이 지경에 이르게 되었는데 앞으로의 삶이야 순탄했겠느냐만은, 사람 명이 길어 반복창은 이후로 10년은 더 살았다. 운명의 장난인지 이 비루한 목숨은 결국 쌀의 가격을 일제의 정부에서 직접 관리하기로 하고 미두시장을 폐쇄하기로 정한 1938년에 끊어지고 만 것이다. 이로 부터 정확히 20일 뒤 미두시장은 우리의 역사속에서 영영 사라지게 되었다.


이 반복창의 삶이 난 왜 이렇게 흥미로운 것일까. 무려 100년이 다 된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전혀 생소하다거나 먼 세계의 이야기 처럼 느껴지지 만은 않다. 이 반복창의 생애가 우리에게 느끼게 해주는 바는 무엇일까. 자신의 인생이 엉망진창이 되었음에도, 투기의 끈을 놓지 못한 한심한 반복창의 생애를 털어놓은 그저 재미있는 이야기 한토막일 뿐일까. 만약 그것이 아니라면 반복창이를 개미 투자자들의 로망으로 보지 말고 자신의 소중한 돈에 대한 자각심을 일깨워 주는 한 교훈으로서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출처 :

편집 서술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262&aid=0000000051 

[신동아 - 미두왕 반복창의 인생유전]

http://ko.wikipedia.org/wiki/%EB%B0%98%EB%B3%B5%EC%B0%BD

[위키백과 - 반복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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