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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사회 이야기

사랑의 매란 없다

김창식 2020. 12. 22. 2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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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의 인권을 보장하면 교권이 추락하는가

제법 오래전에 제가 학생인권조례와 교권에 대한 글을 쓴 적이 있었습니다. 학생인권조례를 제정함으로써 교권이 추락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상당히 많이 있습니다. 아마 그것은 학생들을 체벌로 다스리지 않으면(학생인권조례의 제정) 선생의 말을 듣지 않는다(교권의 추락)는 논리가 작용하기 때문인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말을 듣지 않으면 때려야 한다는 인식은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아직까지 유효하게 작용하고 있습니다. 특히 최근에 학생들이 행하는 아주 악질적인 범죄를 보면 더욱 그런 생각이 많이 드는 모양입니다. 일단 여러 문제는 제쳐두고 저의 학창시절에도 학급에는 문제가 있는 아이들도 제법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만큼 문제가 있는 선생들도 많았습니다. 학생들 자습시켜 놓고 교무실에서 몰래 X동을 보거나 컴퓨터 게임을 하는 경우, 학생들과 사행성이 짙은 내기를 하는 경우, 선생으로서 실력이 부족한데도 불구하고 교편을 잡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감정이 실리지 않은 체벌이 있을 수 있는가

가장 문제가 되는 부분은 바로 체벌입니다. 학생들을 때리는 방식은 정말 다양합니다. 엎드려 뻗치게 한 뒤에 때리거나 무릎을 꿇게 한 뒤에 허벅지 때리기, 손바닥 때리기, 손등 때리기, 뺨 때리기 등등.... 종류도 다양해서 야구배트 부터 해서 학교에서 만들어준 몽둥이(!), 목각, 커다란 나무주걱 등등이 있었습니다. 

 

선생은 일반적으로 잘못한 부분에 대해서 학생들에게 체벌을 합니다만, 간혹 그렇지 않은 이유도 있었습니다. 제 친구는 부모와 상담하고 결정해야 할 일임에도 불구하고 선생이 자신의 뜻대로 대답을 가져오지 않자 친구의 뺨을 때리기도 하였습니다. 더군다나 학생도 맞다보면 너무 아프고 가혹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선생에게 반항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럴 경우는 선생이 더욱 강력하게 체벌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때의 선생의 얼굴에는 '그렇게 한번 더 반항해봐라. 더욱 가혹하게 때려주겠다.'고 쓰여있는 듯했습니다. 

 

이렇듯 때리는 상황에서 감정이 전혀 실리지 않고 넘어간다는 것은 사실 인간이라면 쉽지 않은 일일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원래의 잘잘못을 벗어나서 괘씸해서, 자기가 기분이 나빠서 더욱 강하게 때리는 경우도 있을 것이고, 심한 경우에는 학생을 자신의 사적인 일의 분풀이 수단으로 사용하는 경우도 더러 있었을 것입니다. 

 

모든 일에는 부작용이 있으며 이런 몇몇 잘못은 넘어가 주자는 말씀을 하실 수도 있겠습니다만, 사소한 부작용의 간과라고 치부하고 결국에는 심각한 오용을 낳게 될수도 있다는 점을 염두해 두셨으면 좋겠습니다. 

 

체벌의 결과는 어떤 방향으로 이루어질까

체벌을 당하는 학생의 입장에서는 당장에는 그 행동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학생이 정말로 감화를 하거나 깨우쳐서 그런 것일까요? 일단은 무서우니까 하지 않습니다. 맞으면 너무 아프니까요. 몰래몰래 그 행위를 하거나 거짓말을 하기도 하며, 나중에 그런 공포감이 조성된 상황을 벗어나게 되는 경우에는 그런 행위를 하게 되겠지요.

 

그렇게 맞으면서 큰 아이는 성인이 되어서 자존감이 부족할 수도 있습니다. 심지어 공포감이 조성된 분위기가 아니고서는 자신을 어떻게 통제해야하는지 갈피를 잡기 어려울지도 모르죠. 심지어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고 의지가 부족한 원인이 자신의 나약함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의지박약이나 나약함 조차도 스스로 만들어지지는 않았을 텐데 말입니다. 결국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서 누가 자신을 구속하고 강하게 다스려주기를 바랄지도 모릅니다. 최근에 생겨나는 재수생, 공무원 등을 양성하는 시골 산자락에 위치한 스파르타식 기숙학원의 시스템 같은 것처럼 말이죠. 참으로 아이러니하게도 자유가 보장된 사회에서 구속을 바라는 모습입니다.

 

간혹 자신이 체벌을 통해 어떤 성과를 이루고 사회적으로 훌륭한 위치에 이르렀다고 해서 체벌을 정당화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특히 이런 현상은 예,체능계에 상당히 많이 자리잡고 있는 듯합니다. 자신도 맞아서 이렇게 잘되었으니 너도 맞아서 배우면 잘 될 것이라는 인식 말입니다. 최근에는 폭행이 성폭행으로 변질되거나, 왕따를 당하다 못해 자살을 결심하는 등 여러 사건에 의해 사회에 알려지면서 가혹한 행위가 드러나기도 합니다. 이렇게 맞아서 성공하게 되는 사람보다는 좌절감을 맛보게 되는 사람이 훨씬 더 많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면 합니다.

 

사랑의 매란 없다

학생시절에 자신에게 사랑의 매를 때려줄 선생님만 있었어도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영화의 한 대사가 떠오릅니다. 사실 그렇게 되지 않은 이유는 사랑의 매가 없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 사람에 대한 사랑이 부족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사랑의 매와 사랑은 전혀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사랑의 매라는 것은 없습니다.

 

선생과 부모는 과거에 사랑의 매라는 이름으로 체벌을 통해 아이들을 쉽게 교육해 왔습니다. 적어도 자기 눈앞에서는 그런 잘못된 행위를 하지 않고 말을 잘 들을테니까요. 예를 들어 체벌을 하지 않고 아이들을 교육해야 한다고 해봅시다. 그럼 일단 어떻게 아이들이 잘못되었을때 바로잡아야 할지 감도 오지 않을 것입니다. 한번도 그런적이 없었으니까요. 그렇게 교육할 수 없다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세계의 많은 나라에서 이미 체벌을 하지 않고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으며, 큰 차이 없이 성인으로 잘 성장해 나갑니다.

 

어른이 아이를 가르치기 쉬운 방법으로 가르치는 시대는 지났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를 위해 어른이 보다 많은 노력을 해야합니다. 특히 선생으로서 학생을 가르치는데 있어서 체벌이라는 수단이 교권을 살려준다는 인식은 이제 버려야 할 것입니다. 선생이라면 인품과 학식을 갖추는 것이 학생이 자신의 말을 잘 따르게 할 수 있는 최적의 방법이라고 인식을 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때까지는 그런 것 하나 없이 무사안일주의로 살아왔겠지만 말입니다.

 

몽둥이가 약이라는 속담이 통하지 않는 사회가 오기를 바랍니다. 때려서 아이들의 말을 듣게 한다는 인식이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언젠가 지워지기를 절실하게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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