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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너무 넘쳐흐르는 사회 본문
화제의 책은 할 수 없이 봐야 하는 게 기자의 숙명이다. 그제 밤 신정아씨의 신간 [4001]을 읽었다. 뒷맛이 불편했다. 출간 의도가 고백을 이용한 복수인지 폭로를 통한 흥행용인지, 종잡기 힘들다. 흥미로운 부분들은 이미 최고급 호텔의 기자회견과 출판사의 요란한 노이즈 마케팅 탓에 죄다 노출됐다. 책 내용을 일방적으로 믿기에도 석연찮은 구석이 적지 않다. 다만 "충분한 법률 검토를 거쳤다"는 공언대로 노련한 표현 기법이 돋보인다. "그는 나를 단순히 일때문에 만나는 것 같지 않았다"는 대목이 압권이다. 젊고 예쁜 여성의 한마디가 독자의 무한한 상상력을 자극한다. 상대방 남자 J씨를 한방에 보내는 필살기가 묻어난다.
전직기자 C씨에 대한 표현도 기가 막힌다. "그날 이후로 나는 청바지에 운동화만 신었다." 여성이 치마를 버렸다는 것 하나로 모든 것을 압축한다. 내심 가장 무릎을 친 대목을 B씨와 보낸 첫날밤 묘사다. 신씨는 B씨가 진술한 검찰조서를 그대로 인용했다. 무미건조한 타인의 진술을 빌려 자신이 그때까지 순결을 간직했음을 객관적으로 입중하는 데 성공한다. 누가 이런 진실한 사랑 앞에 '꽃뱀'이나 '몸 로비'라는 추악한 표현을 갖다 댈 수 있겠는가. 노련한 프로의 솜씨가 읽힌다.
씨의 책은 하루 만에 2만 부가 팔렸다고 한다. 출판사 측은 "초판 5만 부가 매진되는 대로 추가 인쇄에 들어간다"며 신이 났다. 요즘은 3000부만 소화돼도 베스트셀러로 치는 출판 빙하기다. 그만큼 우리 사회가 남의 사랑 엿보기에 열광하는 것이다. 올 들어 한국에는 유난히 사랑이 흘러넘치고 있다. 故 장자연 리스트로 시작해 내일은 또한 편의 에로물인'상하이 총영사관'이 개봉한다. 중국 여성을 놓고 영사들끼리 복잡한 치정 관계로 얽히는 줄거리다. 대단원이 스파이물로 끝날지, 단순 브로커의 코믹물로 막을 내릴지만 남았다.
유독 우리 사회만 야한 걸 밝힌다고 부끄러워 할 일은 아니다. 1998년 9월 11일 미국은 더했다. 의회 결의에 따라 빌 클린턴 대통령과 백악관 인턴 직원 모니카 르윈스키의 스캔들 전모가 인터넷에 공개된 것이다. 445쪽짜리 특별검사 보고서는 낯뜨거운 내용으로 가득했다. 사랑은 고작 18번, 섹스라는 단어가 164번이나 등장한다. 에로 차원을 넘어 완벽한 포르노였다. 미국 성인의 12%인 2000만 명이 한꺼번에 인터넷에 접속해 이를 읽느라 야단법석이 났다. 미 정보통신 백서는 "미국은 이때부터 본격적인 인터넷 시대로 접어들었다"고 담담하게 적고 있다.
르윈스키 스캔들은 그 이후가 중요하다. 엉뚱한 후폭풍이 분 것이다. 클린턴 대통령의 공백을 성인잡지 [허슬러]의 사주인 래리 플린트가 차지했다.그는 "섹스에 대한 위선을 깨겠다"며 정치판을 휘저었다. 고위 정치인들의 불륜 제보에 100만 달러의 상금을 내걸자 성 매카시즘 열풍이 불었다. 하원의장 내정자가 낙마하고 수많은 거물 정치인들이 쓸려나갔다. 리더십이 휘청거리면서 많은 일들이 생겼다. 롱텀캐피탈은 1조 2000억 달러의 손실을 내고 파산했다. 미 경제는 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긴 9년간의 호황을 끝내고 정보기술 거품이 붕괴되기 시작했다. 르윈스키는 책 [모니카의 이야기]로 50만 달러를 벌어들였다. 신씨의 책을 통해 우리 사회의 잠재적 관음증은 충분히 확인됐다. 잘하면 상업적 성공도 보장되는 세상이다. 앞으로 비슷한 아류작들이 쏟아질 것 같은 느낌이다. 이런 조짐은 여성 월간지 광고만 보면 분명해진다. 한때 종합일간지와 여성 월간지가 다루는 영역은 달랐다. 지금은 구별하기 힘들다. 양쪽 똑같이 신정아, 상하이 H영사, 서울대 음대 불륜교수를 차례차례 싣는다. 지나치게 사랑이 흘러넘쳐 우리 사회가 이상한 쪽으로 가는 분위기다. 이러다 미국처럼 발밑의 정치 경제 토대마저 유실되지 않을까. 지나침은 미치지 못함과 같다고 했다. 심지어 이 글까지 출판사의 노이즈 마케팅에 휘말린 게 아닌지 겁난다.
이 칼럼은 중앙일보 3월 24일자 34면 이철호의 시시각각에 있는 내용입니다.
이분 땜시 [4001]이라는 책이 몹시 흥미롭게 느껴지는 군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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