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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사회 이야기

천원 줄 테니 차문 열라? 사람 할 짓 아닙니다

김창식 2011. 10. 31. 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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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리운전기사는 밤새 기다리고, 운전하고, 걸어야 하는 직업이다.



뭘 잘못한 건지,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다고 대리운전기사 김석원(가명)씨는 생각했다. 과속방지턱을 거칠게 넘지도, 신호위반을 하지도 않았다. "손님 어디로 모실까요?"라고 물은 게 다였다. 뒷좌석에서 "00동" 한 마디 던지고 술에 취해 잠든 손님이 갑자기 "야, 이 XXX야!"라는 욕설과 함께 주먹을 날릴 줄 누가 알았을까.

 

뒤통수를 갈겨대는 주먹질을 고스란히 맞으며 가까스로 육교 앞에 차를 세웠다. 경찰을 불렀다. 손님은 "내가 언제 때렸냐"며 잡아뗀다. 경찰은 "증거도, 목격자도 없잖아요. 이런 경우는 쌍방과실로 접수되는 거 아시죠? 그냥 좋게 합의하고 넘어가시죠"란다. 도움을 요청하러 전화한 센터에서는 냉랭한 대답만 돌아온다. "그런 건 기사님이 알아서 하셔야죠." 벌써 새벽 1시다. 오늘 하루 일은 공쳤다. 일당도 날아갔다. 얻어맞은 머리와 어깨가 아프다. 그보다 더, 속이 쓰리다.

 

인격무시도 흔한 일이다. 최원철씨는 손님이 뱉은 침을 얼굴에 맞았다.

 

"기사들 무시하는 거 말도 못해요. 돈 천 원 더 줄 테니까 뒷문 열어, 이러고."


그러나 "기사들을 진짜 힘들게 하는 건 손님보다는 업체"라는 게 최씨의 이야기다. 최씨는 저녁 8시부터 새벽 4시까지, 평균 6회 미만 '콜'(배차 주문)을 찍는다. 한 건당 요금으로 1만 원을 받는다. 여기서 업체에 건당 배차수수료 3000원을 내고, PDA프로그램 사용료 월 1만 5000원을 낸다.

 

업체가 제공하는 대리기사보험료 등이 포함된 '관리비'도 내야 한다. 보험가입 약관과 관리비의 사용처는 공개되지 않고 있지만 안 낼 수는 없다. 그러고 나면 6000원이 안 되는 돈이 남는다. 다음 콜을 받은 곳까지 가는 택시비, 허기를 메울 편의점 빵 값에도 손이 떨린다. '콜'이 더 빨리 찍히는 PDA를 쓰려면 센터에 월 30만 원을 더 내야 한다.


이처럼 업체 측이 부당한 수수료와 불법거래를 요구해도 대리기사들은 맞서기 힘들다. 최 씨가 가입한 대구 대리운전기사노조는 대리운전기사노조들 중 유일하게 노조설립신고필증을 갖고 있다. 업체 측이 취소청구소송을 냈으나 대구지방법원이 각하했다. 승리감도 잠시, '노동자'가 아닌 '자영업자 신분'이라는 특수고용직의 굴레가 노조의 발목을 잡았다.

 

업체 측은 이를 빌미로 단체교섭에 응하지 않고 있다. 2009년엔 노조 간부와 조합원 몇몇이 해고를 당했다. 그중 한 명은 새 일자리를 못 구하고 결국 대구를 떠났다. '노동자가 아닌' 이들이 부당한 해고를 하소연할 곳은 기껏해야 공정거래위원회다. 이곳이 기사 편을 들어준들 '권고조치'인 이상 업체가 불응하면 그만이다.

 

"해고가 딴 게 아니에요. PDA를 잠가 버리는 거예요. 그럼 콜이 안 뜨잖아요. 이건 어떻게 해결할 방법이 없어. 그러니까 많은 기사들이 노조 가입조차 겁을 내고 있어요."


"산재보험 제대로 되려면 착취구조 바꿔야"


퀵서비스 기사들의 처지도 비슷하다.

 

"하루 10만 원을 찍으면 그 반이 나가고, 10만 원 이하를 찍으면 나가는 돈이 더 커요."

 

퀵서비스 기사 이재옥씨는 PDA를 통해 '오더'를 받는다. 월 200만 원을 벌어도 수수료 46만 원(23%)을 업체에 떼인다. PDA 프로그램 사용료 3만 원, 적재물 보험료(1~2만 원)도 떼인다. 종합보험료 5만 8000원도 내야 한다. 통신비와 연료비도 20만 원 이상은 쓰인다. 오토바이 유지비와 밥값을 내고 나면, 손에 쥐는 돈은 최저임금에 못 미치기 일쑤다. 이러한 현실에서 조금이라도 더 벌려면 더 많은 오더를 받고 더 빨리 달릴 수밖에 없다. 사고는 필연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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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신호를 기다리고 있는 퀵서비스 노동자들.


10년차 베테랑인 그 역시 사고를 벗어나지 못했다. 건물 2층에 있다는 배송지를 찾으려 오토바이를 탄 채 건물 간판을 올려다보던 중, 한 쪽 발이 보도 경계석에 부딪혔다. 발가락 세 개가 완전히 꺾였다. 세 달 동안 일을 못했다. 그 후로 안전운전이 강박처럼 머리에 박혔다. 그래도 돈이 급하면 어쩔 수 없다.

 

"신경 써서 운전할 때랑 급히 할 때랑 오더 건수도 돈도 두 배는 차이 나죠. 생계가 어렵거나 애들 학비든 뭐든 돈을 빨리 만들어야 할 사정이 있으면 무리하게 운전할 수밖에 없어요."


업체의 착취구조가 점점 커져서 대항하기 어렵다고 이씨는 토로했다. 그가 PDA를 들어 보였다.

 

"이 프로그램에 퀵 업체 500개가 가입돼 있어요. 거기 소속된 기사들이 7, 8000명이에요. 이 수천 명의 사람들이 일을 하면서 무조건 23%를 뺏기고, 일을 안 해도 프로그램 사용료를 뺏기고 있는 거예요. 예전엔 소규모 업체들이 잔머리를 굴려서 조금씩 이런저런 비용을 요구했지만 지금은 아예 이런 큰 프로그램으로 뺏어가고 있는 거죠.

 

PDA가 자리잡기 전엔 지금처럼 수수료 체계가 아니었어요. 한 사무실에 40~50만 원씩 월비만 내고, 나머지는 내 수입이었죠. 그땐 하루에 6시간 자는 거 빼고는 일만 했어요. 내가 몸을 굴리는 대로 돈을 가져갈 수 있었으니까. 그런데 지금은 내가 힘들게 일하면 일할수록 엉뚱하게 업체만 배불리는 꼴이 됐어요."


고용노동부는 지난 8일 '비정규직 보호 대책'의 일환으로 택배·퀵서비스 기사의 산재보험 확대적용 대책을 내놓았다. 이에 따르면 퀵서비스 기사는 보험료를 전액 부담해야 한다. 그마저도 임의가입 형태다. 이씨는 "실효성 없는 정책이고, 방향도 잘못 짚었다"고 비판했다.

 

"어차피 업체가 뒤에서 기사들이 산재 못 들게 방해하는데 산재보험이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진짜 필요한 건 부당한 고용구조를 바꾸는 거예요. 안 그러면 업체는 또 다른 명목으로 기사들한테서 돈을 빼 갈 거예요."


임금체불에 시달리는 건설기계노동자





안근혁씨의 턱에 희끗한 수염이 까칠했다. 덤프트럭 기사인 그는 운전대를 놓고 대명리조트 후문에서 8시간 노동과 기본 생활 단가를 요구하며 노숙농성을 하고 있다. 30일이 다 돼간다.

 

"사측이 노조를 인정 안해서 교섭이 쉽지 않아요. 교섭공문을 세 번씩 보냈는데도 안 만나주다가, 리조트 앞에 집회 신고를 하니까 그제야 차장이라는 사람이 나오더라고요. 그런데 하는 얘기는 결국 똑같아. 1994년도 단가로 임금을 주겠다는 거야. 10시간, 12시간씩 일하는데도."

 

노숙농성이 힘들지 않느냐는 물음에 안씨는 답했다.

 

"어쩌겠어요. 40년 전이나 지금이나 우리 처지가 달라진 게 없는데..."


안씨가 일하던 곳은 대명레저산업에서 발주하고 대명건설이 공사를 맡은 홍천 소노펠리체C.C 골프장 조성 현장이다. 아침 8시부터 밥 먹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저녁까지 덤프트럭을 몰았다. 시간당 2만 3000원을 받고 평균 10시간씩 일한다. 하루 23만 원을 벌어도 유류비, 타이어 교체비, 보험료, 차 유지비, 할부금 등, 내야 할 돈이 한 달에 수십~100만 원에 달한다.

 

날씨가 궂거나 아파서 일을 못 하면 수입은 줄지만 이러한 지출비용은 그대로다. 여기에 건설산업의 고질적 병폐인 다단계 하도급구조가 작동한다. 여러 하청업체들을 거치며 수수료, 알선료를 떼인다. 결국 임금은 반토막이다. 이마저도 제때 지급되지 않는다. '쓰메끼리'라는, 임금을 30~50일씩 늦게 지급하는 관행이 여전하다. 3~6개월짜리 어음으로 임금을 결제해 줘서 수수료는 4%씩 떼고 돈은 6개월 동안 안 주는 곳도 여전히 많다고 안씨는 말했다. 안씨는 40년 동안 덤프트럭을 몰았지만 자녀 셋을 키운 돈은 팔할이 빚이었다. 자녀들은 모두 결혼해 떠났지만 그는 덤프트럭을 떠나지 못했다. 빚을 갚아야 했다.

 

"마이너스 인생이죠."


2010년 말 노동부와 국토해양부는 각각 '건설근로자 고용개선 대책' '건설근로자 임금 제때, 제대로 받기' 등 대책을 추진했다. 그래도 바뀐 건 없다. 전국건설노조는 2010년부터 약 1년간 집계한 건설노동자의 유보, 체불임금은 무려 272억 원에 달한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건설기계노동자들의 체불은 노동부 통계에조차 잡히지 않는다. 사장이 도망치거나 회사가 부도가 나도, 이들의 임금을 보장할 법은커녕 하소연할 곳조차 없다. 건설기계노동자들이 '노동자가 아니라서'다. 실제 130억 원의 임금을 체불한 사장이 미국으로 도피해 호화생활을 누린 성원건설의 사례가 언론에 보도되기도 했다.


임금뿐 아니라 노조마저 뺏길 처지다. 2009년 정부는 전국건설노조에 "모든 레미콘, 덤프트럭 운전자를 노조에서 '자발적 제명'하고, 이를 따르지 않을 경우 노조 설립인가를 철회하겠다"고 했다. 올해 3월 국제노동기구(ILO)가 한국 정부에 레미콘, 덤프트럭 운전자 등 특수고용직 노동자들의 노조 가입 보장과 관련법 개정을 권고했으나 정부는 "특수고용직 노동자는 노동자로 볼 수 없다는 입장이 명확하다. 이들에게 노동기본권을 부여할 수 없다"며 거절했다.


누구나 특수고용직이 될 수 있는 시대


이들이 주장하는 제대로 임금을 받을 권리, 안전하게 일할 권리, 단체행동에 나서 부당함에 저항할 권리, 모든 것이 결국 한 마디로 귀결된다. '노동권'이다. 정부가 이를 외면하고 낸 모든 '보호'대책이 실효성 없는 구호에 그쳤다는 것이 이를 반증한다.

 

그 노동권을 인정받고자 차가운 길바닥에 앉은 재능교육 학습지 노동자들의 농성이 1400일을 넘겼다. 그들과 같은 특수고용직은 전국 200만 명으로 추산되고, 그 수는 꾸준히 확대되고 있다. 사업자등록증을 만들어 계약만 맺으면 누구든 특수고용직이 될 수 있다. 이 불특정다수의 미래가 '차가운 길바닥'이 아니려면, 정부와 사회는 제대로 대답해야 한다. 특수고용직은 노동자인가, 아닌가? 

출처  :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645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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