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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자신을 과소평가하지 말자... 본문
한 10년전 쯤에 7,9급 공무원이 한꺼번에 준비가 될 수 있었던 시기에 공무원 학원을 다녔다.
그 당시 수험생활을 한 2년 반 가량했었는데, 말이 좋아서 수험생활이었지 사실상 노라리였다.
처음에 한 두어달 바짝 학원다니다가 제 풀에 나가 떨어졌다. 내 자신이 장기적인 수험생활에 적합한지는 차치하더라도 공부방법을 찾는데 너무 허덕였던 것 같다. 고개 쳐 박고 무조건 공부하면 되겠지 하는 마음에 마라톤을 전력질주하듯이 이악물고 달렸으니 하기가 너무 싫었다.
두달 학원 종강하고 나서 슬금슬금 나가지 안나가기 시작했다. PC방 가서 게임하기 바빴다. 그 당시의 나는 무엇을 생각하고 살았나 싶다. 그냥 공부가 하기 싫었고, 뭔가 막연해보였다. 대학교를 휴학해서 그런지 돌아갈 곳이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남들보다 빨리 시작하는 수험생활이라는게 꼭 좋은 점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만큼 남들이 하지 않으니 위기의식도 없었고, 함께할 사람이 없으니 외롭고, 정보도 내향적이라 제대로 확보하지도 못하고 시간만 보내기 일쑤였다.
1년정도가 지나니까 7급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경제학이 발목을 잡았다. 분명히 하면 될 과목이었지만, 거기 까지 가는게 정말 버거웠다. 일단 하기가 너무 싫었다. 9급 공무원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당연히 지금 생각해도 9급공무원 훌륭하고 좋은 직업이다. 붙기만 하면 아마 열심히 다녔을 것이다.
근데 9급공무원에도 문제가 있었다. 난 영어와 행정학 공부를 너무 하기가 싫었던 것이다. 5과목을 쳐서 평균 점수를 일정량 확보해야하는 사람이 두 과목이 하기 싫어서 안하면 다른 과목을 잘 본들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그런데도 하기가 싫었다. 정말 싫었다. 철딱서니 없는 인간마냥 그냥 한심하게 하고싶은 공부만 했다.
난 한국사와 국어 공부가 참 좋았다. 행정법도 좋아했다. 희한하게 법과목이 나는 적성에 잘 맞는 것 같았다. 주관식은 풀어본적도 없지만, 그래도 객관식은 생각보다 답이 따박따박 나와있는 느낌이라 해당 지문만 적절하게 이해만 하면 충분히 고득점이 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멍청한 수험생활로 2년 반을 보내고 마지막 9급 공무원 시험을 쳤을때 점수가 딱 그랬다. 아마 영어와 행정학은 점수가 50점이나 나왔으려나. 아예 들여다보지도 않았다.
한국사와 행정법은 만점이었고 국어는 85점 정도 되었던 것 같다. 난 그때도 막연하게 수험생활을 그만두고 학교로 돌아가서 대학공부를 마치면 뭐라도 하겠지 하는 생각을 가졌었다. 그냥 혼자 앉아서 하는 수험생활이 이제 지겨웠다. 친구들과 어울리던 그 학교생활로 돌아가고 싶었다. 무엇때문에 수험생활을 했을까. 그냥 공무원이 막연히 하고 싶었던 것 같다. 막연한 공부는 동기부여도 되지 않았으며, 장기적인 수험생활을 거의 해본적이 없으니 습관도 없었고, 낯짝 두껍게 모르면 물어보고 자존감 충만하게 멘탈 유지할만한 성격도 아니었다. 학원 다니면서 주변사람을 그렇게 의식했다. 남들은 분명히 나한테 아무런 관심도 없을텐데 말이다.
학교로 돌아간들 뭐가 되었겠느냐만, 그래도 공무원 수험생활 하면서 배운 것으로 자격증을 따보리라 마음먹었다. 일단 공무원 가산점을 위하여 취득한 컴퓨터활용능력이 있었고 군대에서 휴가가려고 취득한 워드프로세서 자격증도 있었다. 컴퓨터 자격증은 이만하면 되었다.
다음으로 한국사는 공무원 수준의 한국사를 능가할 시험이 그리 많지 않았다. 딸만한 자격증은 한국사능력검정시험이 있었다. 사실 한능검은 2020년 개편이전에 극악의 난이도를 자랑했는데, 그 당시에도 나는 1급은 충분히 딸만한 실력을 갖추고 있었고 가끔 심심하면 시험 보고 1급을 받아오기도 했다. 그리하여 복학하고 한 2주정도 학습하고 한능검 1급을 취득하였다.
한국어능력시험도 찾아보았다. 대부분이 귀화를 위한 외국인 전용 한국어능력시험이었고, 내가 딸만한 자격증은 KBS 한국어능력시험이었다. 무조건 1급을 따야하는 것은 아니었고, 그냥 보통 3+급 이상이면 준수하다고 하는 것 같았다. 사실 한국어능력시험이 크게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내가 가진 능력으로 딸만한 것은 다 따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알고보니 수능시절부터 난 언어 2등급을 받을만큼 에 꽤 강점이 있는데다가, 공무원 시험때도 나름 선방했으며, 부전공으로 국문과를 하고 있었으니 자격증 공부에 크게 어려움이 없었던 것이다. 이 블로그에도 포스팅했지만 많지 않은 공부시간을 투자했음에도, 난 KBS한국어능력시험을 최상위 수준으로 취득하게 되었다.
다음은 영어였다. 영어를 정말 정말 하기 싫었다. 쓸일도 평생 없을 것 같고 맨날 거지같은 문법 공부도 지겨웠다. 하기 싫으니 단기에 끝내자는 심산으로 영단기 한달 종일반에 들어갔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시종 영어공부만 하는 것이었다. 딱 깔끔하게 한달하고 나와서 시험쳤다. 처음에 들어가기전에 600점대였었던 점수가 한달 공부하고 나오니 800점 후반이 나왔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참 한심했던 것이 난 영어를 하기 싫었던 것이지 못하는 것은 결코 아니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내가 못하는 것은 리스닝이었다. 난 진짜 아주 어릴때부터 듣기를 참 못했다. 남들 다 잘 맞추는 영어듣기를 이상하게 두배 세배씩은 더 틀렸다. 바꿔 생각하면 리스닝 없는 영어는 정말 잘했다는 것이다. 수능 2등급을 맞은 이유도 문제를 총 네개 틀렸는데 그게 모두 듣기였고, 읽기, 문법, 어휘는 다 맞았다는 것이다. 공무원 영어를 다시보면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국어하듯이 풀었으면 80점 정도는 나오지 않았을까 싶다.
컴퓨터, 영어, 한국사, 국어 자격을 다 따고 나서 조금 자신감이 붙었다. 기세를 타서 공기업에 취업을 하고 싶어서 이것저것 조사를 해보니 법학, 경영학, 행정학 중 하나를 공부해야 된다는 내용이 많이 보였다. 행정학이라니. 난 행정학이 정말 하기 싫었다. 하지만 알기로 경영학이 행정학이랑 결이 비슷하고 법학은 내용이 방대하니 부담스러웠다. 그런데 정말 아이러니하게도, 내 전공은 행정학과였다.
행정학도가 행정학이 싫다니. 한심해도 이렇게 한심할 수가 있을까. 대학교 때 어영부영 들었던 수업들이 생각보다 나의 행정학 지식을 갖추는데 꽤 도움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이후 공기업 준비를 위해 다시 찾은 노량진 학원가에서 들었던 행정학 수업은 생각보다 들을만했다. 과거에 들었던 행정법 수준으로 모의고사 등에서 고득점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렇게 여러 준비를 거쳐서 나는 모 공기업에 입사를 하게 되었고 지금도 잘 다니고 있다. 그 당시에 9급이 되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회한의 글이 아니라 제목대로 나 자신을 과소평가하지 말자는 생각이 들어서 쓴 글이다. 이제 어느정도 나이가 들어서 30대 후반을 바라보고 있는데, 다시금 수험생활을 시작하게 되어서 이것저것 생각을 정리하며 글을 한번 써보았다.
이제 이런 쓸데 없는 넋두리는 더이상 하지 않겠지만, 내가 시험에 자신이 없어졌을 때 한번씩은 들여다보려고 한다. 물론 9급 객관식 시험이야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어려운 난이도의 시험일 수도 있다. 내가 9급공무원 수험생활을 바탕으로 자신감의 영역을 주로 기술했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수능 성적도 괜찮았고 대학학점도 괜찮았고, 살면서 무언가를 이해하는데 어려움은 없었다는 것이다. 더 잘난 사람들도 있지만, 내가 못난 사람은 아니라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제는 하기 싫어도 하는 법을 알게 되었고, 해야만 하는 상황이라는 것을 명확하게 알게 되었다. 졸리다고 엎드리지 않고, 배고프다고 배터질듯이 먹지 않아야 된다는 것도 안다.
30대가 20대보다 시험의 합격자가 적은 이유는 단순하다. 20대가 월등히 더 많이 준비하니까. 30대는 이제 자리도 잡고 살기 바쁘고 직장다니면서 준비하는 시험은 쉽지 않으니까 많이들 포기하고 나가 떨어진다. 남자가 여자보다 합격자가 적은 이유도 단순하다. 아직까지 한국사회가 여성이 진출할 수 있는 분야가 고르지 못하기 때문에 이런 시험에 몰리게 되는 것이다. 결국 그냥 어느 나이대고 붙을 사람은 붙고 어느 성별이든 떨어질 사람은 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기죽을 필요도 없고, 어쩌면 내가 살면서 갖춰온 것들이 지금의 수험생활에 엄청난 밑거림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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