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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연예 이야기

소설의 영화화.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김창식 2012. 8. 13. 2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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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전 저는 박해일 주연의 '은교'라는 영화를 우연히 보게 되었습니다. 제가 이 영화에 대해서 알고 있었던 점은 영화의 원작이 박범신의 장편소설 '은교'라는 점과 주연배우인 김고은 분의 노출 수위가 상당히 높다는 점이었습니다. 영화는 그리 길지 않았으며, 제 보는 눈이 평론가는 아닐지라도 그 내용이나 영상 표현등등 그럭저럭 잘 만든 영화라는 것을 짐작해 보게 하였습니다. 이 영화를 본 이후에 저는 서점으로 달려가 박범신의 장편소설 '은교'를 구입하여 반나절에 걸쳐서 읽어보게 되었고, 이로 인하여 예전부터 느끼고 있었던 소설의 영화화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영화는 눈으로 장면을 캡쳐하고 귀로 소리를 듣습니다. 많은 흥행작품들을 보면 무언가 대단히 환상적인 볼거리 들과 짜임새 있는 스토리, 배우의 열연, 굉장한 폭발음 등등 눈과 귀를 즐겁게 해주는 요소들로 가득합니다. 트랜스포머나 반지의 제왕 시리즈 등은 현실에서는 볼 수 없는 환상적인 영상효과를 통하여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 잡기도 하였죠. 

 

하지만 소설에서는 눈으로 글자를 읽는 것만이 존재합니다. 같은 눈으로 보거나 또는 읽는 것이지만, 머릿속에는 차원이 다른 현상이 발생하는 것이지요. 물론 소설 뿐 아니라 수필이나 희곡등 다양한 장르가 모두 해당하는 것입니다. 글을 읽으면서 나오는 이름과 묘사된 인물들의 형태와 배경 등 모든 것들은 우리의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대로 한편의 영화가 만들어집니다. 책이 수십만부 팔렸다면 수십만가지의 형태로 영화가 탄생하게 되는 것이지요.

 

수십만 또는 수백만 부가 팔리는 베스트셀러가 있다면 꼭 한번 자신이 이 소설의 느낌을 잘 살려서 영화로 만들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 사람이 많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가 많이 개봉하는 것일 테고요.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는 흥행하기 위해서 연출진들의 많은 고뇌가 필요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성공한 작품으로 이를테면 이전 아카데미상 8개부문에 노미네이트된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코맥 메카시가 쓴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를 원작으로 한 영화입니다. 이 영화의 감독인 코엔 형제는 배우의 탁월한 캐스팅이나 말투, 행동, 배경 등을 소설의 분위기에 맞추어 음산하면서도 박진감있게 조절하였고, 원작의 느낌을 그대로 살리기 위하여 영화 전반에 음악을 전혀 깔지 않는 시도를 하기도 하였습니다. 우리나라에 개봉했을 때는 완전 망했지만 말입니다.

 

대개 판타지 소설격인 반지의 제왕이나 해리포터 시리즈는 영화화를 시도할 때 엄청난 비용을 들여서 CG로 무장을 하고 웅장한 사운드를 덧붙여 우리의 눈과 귀가 보고 듣고 맛보고 즐기는 데 쉴틈이 없도록 만듭니다. 신선한 듯한 충격의 연속인 것이지요.


하지만 저는 이러한 충격의 연속이 마치 쇠창살로 변하는 듯한 느낌을 가질 때도 있습니다. 제가 영화 '은교'를 보고 나서 소설 '은교'를 읽을 때 떠오르는 그 은교는 소설에서 소상히 묘사한 그 은교가 아닌 이미 뇌리에 박혀버린 그 은교인 것입니다. 어떠한 풍경도, 행위도 이미 그 영화에서 본 영상의 틀 속에 제가 갇혀버린 기분이 든다고나 할까요. 영화와 소설의 내용도 다른 부분이 많아서 조금 충격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실패한 예로 저는 코맥 메카시가 쓴 'The Road'라는 소설에 대단히 감명을 받아 여러번 읽어 보게 되었고, 심지어는 이 소설이 영화로 나온다는 소식을 듣고 개봉하면 어서 달려가서 봐야겠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런데 이게 왠일. 영화의 흥행은 참패로 끝났고, 잔뜩 기대를 해서 그런지 영화를 본 저도 실망감을 감출 수가 없었습니다. 소설에서 느낀 사랑과 진정한 구원에 대한 의문이나, 박진감 넘치는 구성은 없고, 그저 흥미로운 부분을 짜집기 해 놓은 영상물로 느껴졌으니까요.

 

저는 소설을 아마존에서 서식하는 듯한 아주 높고 크고 잎이 무성히 우거진 나무라고 생각합니다. 독자들은 이 나무를 보고 이 꼭대기는 무엇이 있을까 안에는 누가 살고 어떤 열매가 열릴까 아주 다양한 상상을 하는 것입니다. 이에 반해 영화는 이 나무를 보기 좋게 가지를 치는 것입니다. 어떻게 가지를 치느냐에 따라서 더 아름답고 활기가 넘치는 나무가 될 수도 있고, 생 가지들은 잔뜩 쳐서 줄기만 남겨진 볼품없는 나무가 될 수도 있는 것이겠지요. 경우에 따라서는 눈을 뗄 수 없는 판타스틱한 영상, 스타급 배우의 캐스팅, 웅장하고 충격적인 음악 구성과 같은 보석이나 방울들을 이용하여 멋진 크리스마스 트리가 되도록 장식하는 경우도 있겠습니다.


소설의 영화화는 피할수 없는 하나의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좋은 소설을 인간의 머릿속에만 두는 것은 어쩌면 인간의 무한한 무형의 세계를 하나의 모습으로 형상화 하고 싶은 또 그것을 보고 싶어하는 욕구에 대한 예의가 아닐테니까요. 하지만 대단히 지나치거나 못나게 방울인지 똥인지 된장인지 보석인지를 나무에 주렁 주렁 달거나, 줄기만 남기고 이파리를 몽땅 잘라버린 김치 같은 구성이 어쩌면 관객들의 욕구를 해칠 수도 있다는 점입니다. 이런 구성이 오히려 문학작품 그 자체가 가지고 있는 아름다움을 가려버리거나 없애버리는 것은 아닌지, 결국 그 작품의 본질을 호도하여 관객들의 생각의 방향을 하나로 유도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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