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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투병 오빠에게 "결혼 안 할거죠?"... 잔인합니다

김창식 2012. 9. 14.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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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일이 지났다. 오빠가 위암 4기 판정을 받은 지. 1차 항암을 시작한 후 일 주일이 됐을 때 오빠의 몸무게는 10kg나 줄어있었다. 작아지는 오빠를 바라보는 것이 힘겹고 서러웠다. 암 환자의 가족으로 사는 것은 불행으로 구성된 새로운 삶을 사는 것과 같았다. 그것은 견딜 만하지 않았다. 

주변에 암투병 하는 사람이 이렇게 많았구나

생각해보니, 암은 참 많은 사람을 괴롭혔다. 이제야 보였다. 오래 전 언니의 시어머니도, 나의 시아버지도 암으로 돌아가셨다. 작년에는 딸아이의 반 친구 엄마도, 올해는 아들의 반 친구 엄마도 암 투병 중에 있다고 했다. 그럼에도 방관했었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암과 사투를 벌이고 있는데도 말이다.

그뿐 아니다. 오빠의 소식을 듣고 자신의 가족 중에도 암환자가 있었다 말하는 사람도 있었고, 녹색어머니회를 서다 만난 엄마들 중에도 암을 이겨낸 사람들이 둘이나 있었다. 나에게 간간이 오빠의 안부를 묻던 선배는 그 사이 초기 암을 발견하게 된 형제가 있다고 했다. 이제 암을 말하는 사람이 또렷하게 보이기 시작했고, 그들의 아픔이 전달됐다.

오늘도 포털 사이트 검색어 순위에는 암으로 죽은 가수의 이름과 초기 암으로 수술을 끝낸 가수의 이름이 포함됐다. 기대할 것이 있는 표정으로 거리를 걷는 사람들 가운데 얼마나 많은 사람이 암과 싸우며 살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연예인 '임윤택'. 사람들은 아픈 오빠에게 그 이름을 말했다. 오빠와 똑같은 위암 4기인 그는 케이블 방송 오디션 프로그램 수상자로, 가수로 활동하고 있다. 지난해 투병중인 임윤택의 노래를 들으며, 오디션을 지켜봤던 내가 이제 그의 아픔을 공유하는 처지가 된 것이다.

일부 누리꾼은 임윤택이 '암 마케팅'을 하고 있다고 했다. 위암 4기 환자라는 사실을 믿고 싶어하지 않았다. 뼈만 앙상한 모습으로 병상에 누워 있어야 할 환자가 무대에 올라 춤추고 노래하며 '성공'하는 모습이 못마땅한 것이다. 

그의 성공에는 부정과 거짓이 존재할 것이라는 불신이 뿌리박힌 듯 보였다. 게다가 임윤택의 결혼과 임신 소식은 그들의 의혹을 확신으로 바꿔놓았다. 그들은 임윤택의 위암 4기는 '거짓'이라고 확신했다. 

"알고 보니 위염을 위암으로 잘못 진단한 게 아닐까요."
"항암치료 받는 분이 아기를 가지고 고추장찌개에 고기 먹는 사진을 트위터에 올려 자폭하는 꼴을 보아하니 어이가 없구나."
"그냥 초기 암을 엠넷하고 무리수 띄우고 말기로 이거..한심하네".

악플은 넘쳐났다. 임윤택의 '위암4기 논란'이 계속되자, 급기야 주치의가 소견서를 공개해 임윤택의 상태를 증명하기에 이르렀다.

위암 4기 환자에게 "결혼할 생각 있는 건 아니죠?"

ⓒ sx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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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플러에게 묻고 싶다. 환자는 행복해서는 안 되는 것일까. 불행이 결정된 사람이니 고통스러운 얼굴로 남은 생을 살아야 맞는 것일까. 

악플을 다는 사람들 가운데 암환자의 가족이거나 암환자를 가까이에 둔 사람은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항암치료는 쉽지 않다. 먹지 못하고 토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사람마다 조금씩 부작용이 다르게 나타난다. 빈혈이 생기거나 입안이 헐고, 코피가 나고 손저림 등의 증상이 생길 수 있다. 암세포를 죽이기 위해 쓰이는 독한 항암제는 정상세포까지 공격하기 때문이다.

백혈구 수치가 떨어지며 면역력이 저하돼 생길 수 있는 많은 부작용도 무시할 수 없다. 환자의 체력은 항암을 받으며 더 많이 떨어진다. 바닥난 체력을 키우기 위해 항암의 중간 적어도 2, 3주 동안은 휴지기를 갖는 것도 그 때문이다. 많이 먹어야 하고 충분한 영양을 채워 주어야 한다. 몸무게가 돌아와야 또다시 항암을 시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항암을 쉬기 시작한 지 하루 이틀만에도 기력은 회복되기 시작한다. 암 환자라도 항암을 쉬는 기간에는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가 있다. 항암을 쉬는 것만으로 좋아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겉모습이 아무리 건강해 보여도 몸속에는 암세포가 여전히 있다.

누구보다도 두렵고 힘든 사람은 환자 본인이다. 가족이라 해도 환자의 절망을 이해할 수 없고 고통의 분량을 대신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분명한 것은 암환자도 자신의 삶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환자이기 전에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똑같은 사람이다.

지난 8월, 항암을 시작하며 만난 종양내과 교수는 오빠에게 '결혼할 생각 같은 걸 하는 건 아니죠?'라는 말을 차갑게 내뱉었다. 고개 숙인 오빠의 뒷모습을 보며 마음이 무너졌다. 의사는 수많은 환자에게 구체적인 절망을 설명할 뿐이었다. 모든 말이 사실이라 해도 그것은 너무 가혹했다. 

남은 생을 선택하고 결정할 권리는 모두에게 있다

▲  방사선치료를 받고 있는 암환자 모습.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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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도 다른 사람의 남은 생을 결정할 권리는 없다. 그렇지만 의사는 선택을 허락하지 않았다. 이제 모든 것이 끝이라고 선언하듯 뱉어내는 그 한마디가 오래도록 가슴에 남았다. 환자도 원하는 삶을 선택해서 살 권리가 있는 것을. 그리고 그것은 누구도 아닌, 본인 스스로 선택하게 하는 것이 옳다. 

그 누구도 자신의 인생을 쉽게 결정하지 않는다. 암환자라면 더더욱 말이다. 모두가 언제 죽을지 모르는 인생이라면 결국 가장 원하는 일상을 선택해 살아가는 것이 최선이 아닐까. 그것이 결혼이든 또 다른 무엇이든 말이다. 충분히 고민한 후에 선택한 자신의 인생이다.

임윤택은 선택을 했다. 자신이 원하는 삶을 선택해, 새롭게 살아야 할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임윤택과 그의 아내의 인생을 대신해 살아 줄 사람이 아니라면 그 누구도 그들의 선택을 비난할 권리는 없다. 그 선택으로 언젠가 후회하는 순간이 올지라도 그 또한 자신이 감당할 삶의 일부분인 것이다.

분명한 것은 사람들이 임윤택을 향해 악플을 다는 그 순간에도 많은 암환자가 그의 모습을 보며, 용기와 희망을 갖는다는 것이다. 오빠와 나 역시 그 중 하나다. 포털 사이트 검색어에 임윤택의 이름이 있으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것이 사실이다. 허나 완치가 힘든 위암 4기라도 스스로 걷고 자신의 입으로 음식을 씹어 삼킬 수만 있다면 희망이 없지 않다고 믿는다. 

오늘도 암 병원에는 수많은 암환자가 오간다. 그들은 항암을 거부할 수도 있고, 자신이 원하는 또 다른 삶을 선택할 수도 있다. 그들의 어떤 선택도 존중받을 권리가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투병중인 수많은 사람이 자신이 선택한 삶을 살며 행복한 모습으로 암을 이겨내기를 기도한다.


출처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778229&CMPT_CD=P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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