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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연예 이야기

결코 무겁지도 결코 가볍지도 않은.- 연극 '아트' 후기

김창식 2018. 9. 27. 0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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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ART>


장소 : 대학로 유니플렉스 2관

기간 : 2018.09.07 ~ 2018.11.04

각본 : 야스미나 레자(Yasmina Reza)

출연 : 엄기준, 최재웅, 최영준, 김재범, 박은석, 정상훈, 박정복, 장격수, 김지철

공연시간 : 100분


얼마전에 여자친구와 함께 연극을 한편 보고 왔습니다. 아트라는 제목의 연극이었는데, 사실 엄기준이 출연한다고 해서 엄빠인 여친님이 힘겹게 예매를 했더라죠... ㅎㅎ 우리의 기준오빠를 보기위해 표가 그렇게 빨리 매진되는지는 잘 몰랐습니다... ㅎㅎ


아무튼 요 근래에 연극이나 뮤지컬을 한달에 한편씩은 꼭 보고자 합니다. 하지만 생각보다 작품 자체의 내용적 측면이 썩 만족스러운 작품은 많이 보지를 못한거 같아서 아쉬워 하던 참에 이 공연을 보게 되었습니다. 결과는 대만족이었습니다.


아무래도 남성 배우들만 출연하는 연극이라서 그런건지 원래 연극이 여성관객들 위주로 시장이 돌아가서 그런건지는 몰라도 극장의 좌석점유율은 여성분들이 90%이상을 차지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내용은 뭔가 남성들이 더욱 공감할만한 우정에 관한 내용이었는데 말이죠. 오히려 제 친구들을 불러서 함께 보고 싶었던 연극이었습니다.


연극에는 단 세명의 배우만 출연합니다. 세르주, 이반, 마크. 하지만 세명으로 내용을 보여주기에는 아주아주 충분합니다. 줄거리랄 것도 없습니다만 간단하게 이야기 해보자면, 세르주가 한편의 그림을 구매한 것으로부터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크고 아름다운(?) 그림을 무려 2억이라는 돈을 주고 샀다는 내용에서 부터 말입니다. 이 하얀 바탕에... 하얀 바탕만 있는 그림을 세르주가 구매했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마크는 조롱과 비아냥을 일삼으며 세르주와 대립각을 세우게 됩니다. 세르주와 마크 사이에는 자신의 주관이 뚜렷하지 못한 이반이 존재하고 그 사이에서 어쩔 줄을 몰라하는 이반에게도 갈등의 뇌관이 다가오게 됩니다. 



여기부터는 제가 연극을 보고온 후기입니다. (스포일러 주의!!) 


무엇보다 연극의 제목은 아트. 즉 예술입니다. 하지만 하얀배경에 하얀 대각선.... 하얀 직선... 등이 그려져 있다는 이 2억이나 하는 작품을 통해 예술을 논하고자 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이 연극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의 작품을 두고 세르주와 이반, 마크가 벌이는 서로간의 관계를 치밀하게 파헤쳐 나가는 것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그들은 10년을 넘게 알아온 사이지만 지금은 걷잡을 수 없이 멀어져만 가고 있습니다. 과연 그 '하얀 판때기'라는 하나의 발언에서 비롯된 논쟁으로 인해 멀어졌던 것일까요. 그것은 결코 아닙니다. 아주 오래전부터 어느 순간에서부터 멀어져왔던 그들의 갈등은 마치 이성적인 논쟁인 것 마냥 잘 포장되어 그 예술 작품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예술 작품을 이해를 할 수 있는지, 무려 2억이나 주고 구매한 의도가 무엇인지, 서로의 대화를 통해 자신의 주장이 옳다고 나름의 근거를 대고 이야기를 하지만 논리적인 것은 없습니다. 애당초 감성의 영역이 자리하는 작품의 세계에 이성적인 이야기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사실은 하얀바탕에 그들의 갈등이 더욱 선명하게 드러나고 있을 뿐입니다.


세르주는 피부과 의사로 예술작품을 탐닉합니다. 아주 부유한 환경은 아니지만 고심에 고심을 거듭하여 2억이라는 돈을 주고 그림을 구매합니다. 그는 절친한 친구 이반과 마크가 이 그림을 구매한 자신을 이해해주거나, 이해해주지 못하더라도 그냥 넘어가기를 바랍니다. 한편 마크는 절대 그럴 마음이 없습니다. 왜 이렇게 마크가 날이 서서 세르주를 비난했던 것일까요. 극의 후반에 들어 갈등이 정점으로 치달아 갈 때쯤 그것을 알게 되는데, 그 갈등의 원인은 현실의 우울한 자신과는 달리 우월했던, 세르주가 자신을 우상으로 떠받들어 주었던 그 과거의 시절을 되찾고 싶다는 뜻이었습니다. 이반은 이 둘 사이에 서서 '하얀 판때기 논쟁'에서 어쩔줄을 몰라합니다. 정말 이 그림이 예술 작품으로 가치가 있다는 것인지, 없다는 것인지 본인도 잘 모르는 듯합니다. 심지어 집에서 결혼을 앞두고 어머니와 여자친구의 갈등에서 어쩌지 못하고 도망쳐 나온 이반은 세르주의 집에서도 갈등을 마주하게 되자 더욱 더 혼란에 빠집니다.


이들의 고민은 이렇게 제각각이지만 사실 셋이 바라는 점은 서로에 대한 따뜻한 시선입니다. 서로가 각자 가지고 있는 현실에서 잠시 떨어져서 저녁을 함께하고 공연을 같이보는, 그런 작은 행복은 우정의 원동력이고 사실 친구관계라는 것에서 모두가 바라는 것입니다. 연극이 더욱 공감이 가는 이유는 아마 우리 모두가 세르주고 마크고 이반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 연극은 갈등이 점점 고조되면 고조될 수록 더욱 재미있어집니다. 마치 관객들의 웃음은 그들의 갈등을 비웃는 것처럼 느껴지게 만들기도 합니다. 갈등이 해소되는 순간의 웃음은 마치 왠지 안도의 웃음처럼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극의 정황상으로는 세르주와 마크가 중심적인 역할을 하지만 치고 달리는 역할은 이반이 주를 이룹니다. 제가 봤던 회차에는 김지철이라는 배우가 이반을 연기해주셨는데, 허우대만 멀쩡해서는 줏대도 없는 남자의 허우적거리는 연기(실제로는 아니시겠지만...)를 속사포 같은 대사를 통해 정말 잘 표현해 주셨습니다. 다른 분들도 연기를 잘하셨지만 특히 훌륭하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과거 친구들 사이의 제 모습이 마크와 같이 중심을 잡지 못하고 허우적거렸던 포지션이었던지라, 더욱 공감이 되었던 듯하네요. 친구들 앞에서 자신의 불만과 현실을 토하듯이 쏟아내는 것을 보며 묘한 후련함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결국 마지막에 세르주는 이반에게 펜을 주며 낙서를 해보라 합니다. 하얀 눈속에 스키를 타는 졸라맨(?)의 모습을 그린 이반은 뭔가 마음이 풀어진 듯한 묘한 표정을 짓죠. 사실 이 펜은 깨끗하게 지워질 수 있는 그런 펜이었지만 세르주는 이를 몰랐고, 특수한 약(?)으로 간신히 지웠다며 이반에게 갈등의 해소를 위한 새하얀 거짓말을 합니다. 


극의 막이 내릴 때쯤 서로가 하얀 그림을 보면서 한마디씩 합니다. 그중 이반이 하얀 그림을 보며 내뱉는 대사가 매우 인상적입니다. '하얀 구름이 가득하고 하얀 눈이내리는 곳에 스키를 타고 있는 자신의 친구의 모습이 가려져 보이지 않는다.' 그가 갑자기 눈이 띄여서 예술을 더하여 그림을 보는 것은 절대로 아닐 것입니다. 이 갈등을 봉합하고 우정을 이어가기 위한 새하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겠지요.


마지막 이반의 대사를 들었을 때 안도감이 들면서 뭔가 감동적인 느낌이 들었습니다. 최근에 친구랑 다퉜다가 화해를 해서 더욱 그런 마음이 들었을 수도 있겠습니다. 뭐 꼭 그렇지 않더라도!! 친구들 사이에서 발생할 수 있는 갈등의 흔한 요소를 거리감 없이, 이질감 없이, 하얀 바탕의 그림이라는 특이한 소재에 빗대어 표현 했다는 점에서 연극 [아트]는 너무 훌륭했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대사량이 엄청난데도 불구하고 배우분들이 소화를 잘해주셨습니다. 쉬지않고 이어간 100분의 시간이 전혀 지루하지 않았습니다. 조금 아쉬운 점이 있었다면, 세르주와 마크의 다툼을 보다 격하게 이어갔으면 그 갈등이 제법 더 심각하게 느껴졌을거라고 생각합니다만 그것도 극의 즐거운 흐름을 끊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또 아닌 것 같기도 하고.... 헤헤


극을 보고 바로 후기를 써야 느낌이 살아있는데, 게을러서... 시간이 좀 지난 후에 후기를 쓰게 되었습니다. 예술작품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연극이 자칫 무겁다고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매 순간 웃음을 선사하다보니 결코 무겁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결코 가볍지 않게 느껴진 건 우리네 삶과 너무나 밀접한 우정이라는 요소를 담고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코 무겁지 않고 결코 가볍지 않은 그래서 정말 좋았던 연극 아트. 


오늘의 포스팅을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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