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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메이션 일루셔니스트 - 마법사에게 더이상 마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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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메이션 일루셔니스트 - 마법사에게 더이상 마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김창식 2018. 7. 12. 0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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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에게 찾아온 마법같은 순간 '일루셔니스트'


여자친구와 Btv에서 공짜 영화를 검색하던 중 일루셔니스트라는 걸 얼핏 보게 되었습니다. 과거에 보았던 마술 영화 일루셔니스트인줄 알고 오랜만에 다시 한번 보면 재밌겠다 생각나서 틀어봤는데 왠걸? 이건 한편의 애니메이션이었습니다. 1시간 15분 정도의 짧은 애니메이션이었는데, 다 보고 난뒤에 정말 좋은 선택을 했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렇게 후기를 쓰게 되었습니다.


해당 리뷰는 영화의 모든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애니메이션 일루셔니스트는 프랑스의 실뱅 쇼메 감독이 2010년에 발표한 장편 애니메이션입니다. 저는 그러지 못했지만 기본적인 시대적 배경을 알고 보면 더 좋을 듯 싶습니다. 시대상은 1950년대 말의 파리와 에든버러를 중심으로 펼쳐지고 당시에는 로큰롤의 탄생과 더불어 뮤직홀이 점차 사라지던 무렵이라고 합니다. 이 뮤직홀에서 활동했던 사람들의 직장은 하나 둘씩 사라져 갔는데요, 그 중에서 마술사, 이 영화의 제목인 일루셔니스트로 일하는 나이 든 남자가 떠나는 여행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 로큰롤에 밀리고 밀린 일루셔니스트의 공연


일루셔니스트는 인기가 없습니다. 모두들 외면합니다. 더 이상 자신을 찾지 않는 프랑스를 떠나 영국으로 항하죠. 하지만 그렇다고 다른 것은 없습니다. 작은 술집이나 극장을 전전하며 근근히 생계를 이어갈 뿐입니다. 


△모두들 외면하는 그의 마술 공연


그러던 그는 산넘고 물건너 간 스코틀랜드의 작은 시골 마을의 축제에 공연을 가게 되는데요, 그 곳에서 일하는 앨리스라는 어린 아가씨를 만나게 됩니다. 그의 작은 마술에 감동을 받아 그녀는 셔츠를 빨아주게 되는데요, 그 마음이 예뻐서 그녀의 낡은 신을 보고 예쁜 구두를 사줍니다. 앨리스는 마법사의 마법에 빠져서(?) 그를 몰래 따라가게 되고 그러면서 본격적인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앨리스에게 빨간구두를 선물하는 일루셔니스트


△몰래 일루셔니스트를 따라가는 앨리스. 그 여정의 결말은...


영화의 전반은 일루전, 즉 환상이라는 것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실 앨리스와 일루셔니스트의 만남 자체가 환상의 시작입니다. 


ILLUSIONIST는 마술사, 마법사. ILLUSION은 환상입니다. 일루셔니스트는 환상을 만들어내는 사람이죠. 그가 만들어낸 작은 환상에 빠져든 앨리스이지만 역설적이게도 일루셔니스트에게 앨리스 역시 인생에 환상과도 같은 존재입니다. 앨리스와 자신의 환상을 깨고 싶지 않은 일루셔니스트는 더욱 고단하게 일을 해 나가야 하지만 그럴 수록 그 환상과 멀어져 갈 뿐입니다.


△자신과는 전혀 무관한 카센터 일을 하러 찾아간 일루셔니스트


앨리스는 뾰족구두와 하얀 털코트, 드레스를 찾는 순진한 소녀에 불과하죠. 그저 마술사를 따라오면 모든 일이 마법처럼 이루어 질 것이라고 믿었나 봅니다. 결국 그녀는 그녀에게서 의도치 않게 점점 멀어져가는 일루셔니스트 대신에 건장한 청년과 사랑에 빠지게 되고 그 남자를 따라가게 됩니다. 


△앨리스가 동경하던 삶은 환상에 불과한 것일까


△멋진 남성을 보고 사랑에 빠진 앨리스


앨리스가 그 남자를 만나는 것을 본 일루셔니스트는 MAGICIANS DO NOT EXIST(마법사는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말을 남긴채 자신의 길로 떠나게 됩니다. 앨리스에게도 일루셔니스트에게도 이제 환상이라는 것은 없어진 것입니다. 이제 앨리스는 그녀대로 일루셔니스트는 그대로의 인생이 남아있을 뿐입니다. 어쩌면 저 말이 일루셔니스트 자신에게 하는 이야기일 수도 있겠네요. 그냥 단순하게 자신이 떠난다는 이야기로 볼 수도 있고요.


△Magicians Do Not Exist


앨리스가 젊음의 시작이라면 일루셔니스트는 저물어가는 인생입니다. 서로의 현실은 너무나도 다른 것이기 때문에 이제 서로가 담담하게 그 인생을 받아들일 뿐입니다. 앨리스가 떠난 호텔의 간판은 깜빡거립니다. 그 안에서 함께 잠시 머물렀던 광대들의 저물어가는 인생처럼 말이죠. 떠난 자리에 책장이 바람에 휘날리며 그림자가 새의 날갯짓처럼 나타나는 것은 낡은 호텔을 떠나 젊음의 세계로 나아가는 앨리스의 모습을 표현한 것으로 보입니다.


△바람에 날리는 책장으로 나타나는 새의 날갯짓


일루셔니스트는 앨리스를 보내고 비로소 자신과 항상 함께해왔던 토끼를 들판에 놓아줍니다. 이제 완전한 혼자만의 여정을 떠나는 것입니다. 토끼도 이제 자신만의 삶을 살게 되는 걸까요? 그 와중에 여친느님 갑자기 야생에 풀어두면 적응 못할 수 있다며 ㅎㅎ


△토끼를 놓아주고 떠나는 일루셔니스트


떠나는 기차에서 마지막 몽당 색연필을 찾는 아이를 보고 자신의 긴 색연필로 바꾸어줄까 머뭇거리다가 결국 몽당 색연필을 내밀게 되는데요, 이것으로 더 이상의 환상은 없다는 담담한 모습을 볼 수 있겠습니다. 마지막에 꺼내는 사진을 통해 들판으로 돌아간 토끼처럼 자신도 그리운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려는 것인지 암시를 주려는 것 같기도 하네요. 파트너 토끼도 없는데 어떻게 마술을 해


△몽당연필을 줄까 긴연필을 줄까 고민하는 일루셔니스트


일루셔니스트가 달리는 기차를 뒤로한 채 마지막으로 도시의 모든 불이 꺼집니다. 텔레비전 가게도 뾰족 구두집도 하얀 코트 집도, 중고 가게도, 전성기를 떠나 보낸 로얄 뮤직홀도 말입니다. 그러면서도 뮤직홀의 마지막 불씨가 꺼지지 않고 날아간 것은 일루셔니스트가 마지막 불씨를 갖고 떠난 것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아니면 자신의 영화를 통해 자크 타티를 기리는 마음이 꺼지지 않고 날아와 이 영화에 남았다는 것일까요.(포스팅 말미 ps에 설명) 


영화가 아름다운 이유는 크게 몇가지가 있겠습니다만, 우선 뭔가 모를 투박한 그림체가 드러내는 극강의 영상미때문입니다. 1950년대 도시와 시골의 모습을 정말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냥 잔잔한 영화 스토리에 드러나는 그림만 봐도 눈이 즐거운 소소한 볼거리라고 생각합니다.


△시대적 배경을 투박하지만 아름답게 표현한 영상미가 돋보인다


또한 몰락하는 자들의 비참한 인생을 가감없이 담아내고 있습니다. 뮤직홀의 악사들, 서커스단의 광대들은 모두 일자리를 잃어가고 허름한 호텔에서 자살을 시도하는 가 하면, 복화술사는 오랜 친구인 가면을 팔아버리고 길바닥에 나앉습니다. 중고상점에 나온 그 가면은 가격마저 날로 떨어지더니 마지막에는 거저준다고 바뀌었습니다. 성기를 넘어 몰락하는 자들의 인생을 현실적으로 그려내고 있습니다.


△한때 황금기를 누렸던 광대의 몰락


문제는 이런 황금기의 몰락을 너무 담담하게 담아냈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대사도 거의 없습니다. 절제된 분위기에서 나타나는 소소한 개그와 더불어 나타나는 그들의 몰락에 일루셔니스트와 앨리스의 꺼져가는 환상에 자꾸 희망이라는 것이 나타나기를 마음속으로 기도하고 있는 저를 비웃기라도 하듯이 영화는 끝까지 저물어 가면서도 담담하게 끝이 나고 맙니다.


△갈수록 값어치가 떨어져가는 복화술사의 인형


영화가 처음 내렸을 때는 뭔가 잔잔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영화 해석을 위해 두번 세번 볼 수록 마음이 짠하고 울컥거려서 도저히 볼 수가 없었습니다. 위에 언급한 영화 속의 작은 요소들을 알아갈 때마다 마음이 더 애잔해지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일루셔니스트의 삶이 짠해보이는 것은 남일 같지 않아서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럼에도 그의 인생은 달리는 기차 속에서 현재 진행형이고 비극도 희극도 아닙니다. 앞으로 일루셔니스트와 앨리스가 살아가야 할 인생만이 남아있을 뿐입니다. 그 인생들 마저도 담담하게 잘 헤쳐나가기를 바라는 저의 간절한 마음만 남았네요. 그런 것을 여운이라고 하는가 봅니다.


저는 로얄 뮤직홀에서 꺼지지 않고 날아간 마지막 불씨가 일루셔니스트가 안고 간 것이라고 생각하고 싶습니다.


△로얄 뮤직홀의 마지막 불씨



한줄평과 주관적인 평점


마법사에게 마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저물더라도 담담하게 살아갈 인생만이 존재할 뿐이다.


10점 만점에 8점!! 하찮은 리뷰들이지만 제가 이때까지 매긴 평점 중에 최고점인 듯하네요.

두번 세번 보세요 제발 ㅠㅠ



ps. 알아두면 좋을 듯한 영화 정보!


영화 공부 차원에서 접근하자면 영화는 자크 타티라는 프랑스의 고전 영화 감독이 이미 구상했던 영화를 실뱅 쇼메가 후대에 애니메이션으로 만든 것이라고 합니다. 자크 타티는 키가 191cm에 달하는 장신이었다고 하는데요, 어쩌면 이 일루셔니스트가 바로 자크 타티가 아닐까 싶네요. 그가 보는 사진 속의 여자 아이 사진과 더불어 자크 타티의 딸인 소피 타티쉐프에게 라는 문구로 마지막을 장식하고 있습니다. 또한 일루셔니스트의 몸짓 등도 자크 타티의 모습을 거의 그대로 표현했다고 하네요.



자크 타티는 영화 감독이기는 했지만 과거 프랑스 코미디언계의 거장이었다고 하네요. 실뱅 쇼메는 그의 인생 자체를 일루셔니스트로 표현하고 싶었나봅니다. 코미디언과 영화감독으로서의 황금기를 뒤로한 채 말년에 비운의 삶을 살았던 자크 타티의 삶과 결부시켜서 표현해보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오늘의 포스팅은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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