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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구를 아십니까

김창식 2018. 6. 20.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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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혹시 조상구를 아십니까? 잘 모르신다면 혹시 야인시대라는 드라마를 본 적이 있나요? 아저씨 이러지마...

야인시대에 시라소니 배역을 맡았던 이북 사투리 구수한 배우 말입니다. 그 분이 조상구입니다.




영화배우 조상구는 1954년 12월 18일 경주출생입니다. 학창시절 굉장히 깡다구가 센사람이었다고 하는데, 이런 독기있는 성격 덕분에 주변에서 당해낼 사람이 없었다고 합니다. 공부도 곧잘해서 동국대학교 영어영문학과에도 진학하고 또 해병대에 자원입대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1978년 연극 '햄릿' 으로 데뷔하고 1979년 영화 '병태와 영자'로 스크린에 등장하여 지금까지 활동하고 있습니다. 데뷔를 일찍 한 것에 비해 자신의 얼굴을 알리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스물여섯에 아내와 결혼하고 극단 생활을 하는 동안 조상구는 폐병에 걸려서 거의 7년간 앓아 누웠습니다. 결핵때문에 42킬로까지 몸무게가 떨어져 보기도 하고 위궤양에 걸리기도 하고....  그 당시 수없이 주사를 맞아온 기억 때문인지 아직도 주사바늘을 두려워한다고 합니다.


그렇게 지내던 조상구는 7년만에 기회가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고등학교까지 학창시절을 함께해 온 죽마고우 이현세 원작의 공포의 외인구단 영화에 캐스팅 되면서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사실 캐스팅이라기 보다는 친구에게 자신을 추천해달라고 했었다네요. 사실 그의 본명은 최재현입니다. 그는 공포의 외인구단에서 마동탁의 피칭머신에 불과했던 비운의 투수였지만 외인구단에 합류하며 인생역전 스토리를 쓰게 된 조상구 역할을 맡았습니다. 이 역할이 많은 인기를 얻게 되어서 그 이후 이 이름으로 활동을 해왔습니다. 인터뷰에 따르면 많은 이가 사랑했었던 외인구단의 주인공 '까치'의 실제 모델이었다고도 합니다.


이듬해에는 지옥의 링으로 첫 주연을 맡으면서 연기 활동을 보다 크게 이어가는가 싶었습니다만, 당시 들어오는 배역을 몇 번 거절하다보니 더 이상 배역이 들어오지 않게 되었다고 합니다. 오랫동안 쉬는 그 시간이 배우에게는 큰 고통이었을 것입니다.


이런 조상구가 사람들에게 더 유명해지게 된 계기는 이 시절에 찍은 드라마 '야인시대'입니다. 실제 시라소니보다 더 시라소니 같이 배역을 잘 소화해서 오히려 후반에는 야인시대의 진주인공 포스를 풍기기도 했습니다.


처음 시라소니 역할을 추천받고 감독을 만났을때는, 감독이 탐탁치 않게 여겼고 10분도 안돼 밖으로 나와서 두고두고 아쉬워했다네요. 그 와중에 아내분이 시라소니가 이북사람이니까 혹시 모르니 연습을 해보라 해서 같이 연습을 하던 중 시라소니 역에 확정이 되었다는 늦은 전화를 받았다고 합니다. 그 다음날 감독을 다시 만났는데 이북사투리를 하냐고 물어보고 그동안 연습한 것을 들려주었더니 감독이 더 볼것 없다하며 바로 캐스팅을 했다니 그 아내분의 현명함도 크다 할 수 있겠네요.


인터뷰에 따르면 그 이후로 자신의 삶은 항상 불행의 연속이었는데 행운이라는게 찾아왔구나라는 사실을 알고 모든 일에 감사하면서 살게 되었다고 하네요^^ 그 이후로 그는 간간이 드라마나 영화에 단역으로 출연할 때 너무 행복했다고 합니다. 몇초뿐인 장면을 찍으려고 하루종일 추위에 떨며 기다려도 마냥 즐거웠고 이게 사는 목적인 것 같다고 하네요.


△야인시대에서 시라소니만 모아둔 영상. 조상구의 연기와 액션신은 결코 노력 없이 나오지 않았음을 보여줍니다.


영화배우 조상구는 이렇게 인기를 얻는 듯하지만 생각보다 많은 인기를 얻지 못하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후 '연개소문', '식객', '타짜', '무신', '징비록', '장영실' 등 주로 사극에 출연하면서 자신의 존재감을 부각시키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시라소니 이후로 뭔가 보여준 것이 없다며, 겸손한 자세를 갖고 있지만, 그는 연기에 앞서면 누구보다도 치열하게 배역을 연구하는 배우입니다.


매일 7~8km를 뛰며 체력관리를 해오면서, 과거에 '식객'에서 정형사(소를 도축하는 사람)를 연기하기 위해서 도축장을 견학하면서 칼 잡는 법을 배우고 소를 네마리나 잡았다고 합니다. '징비록'을 찍을 때에는 '마에다 토시이에'라는 캐릭터를 만들기 위해서 일본영화 100여편을 찾아보기도 했다니 그의 연기에 대한 열정이 참 대단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지금도 그 입지를 서서히 높여가는 배우 조상구의 연기인생은 지금도 현재 진행형입니다.


△야인시대 시절 유일하게 찍은 CF.... 굴욕이라고 해야할지....?




그에게 다른 직업이 또 하나 있다면 바로 전문번역가입니다. 물론 지금은 번역일을 하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만, 한때에는 손꼽히는 전문번역가였다고 합니다. 과거 90년대 번역의 트로이카라고 하면 이미도, 김은주, 조상구였다고 할 정도 였으니 그의 번역가로서의 위상은 상당히 높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영화 '회색도시'를 촬영하던 당시 우연히 영화번역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조감독이 영화대본을 놓고 번역하길래 영어를 얼마나 잘하길래 번역을 하느냐고 했더니 못해도 할 수 있다 비디오 한 편당 3만원씩 준다니 한달에 스무편이면 60만원을 벌 수 있겠구나 싶었다네요. 더군다나 동국대 영문과를 나온데다가 배우로서 극의 분위기 파악에 자신있었던 조상구는 그렇게 '먹고 살기 위해' 아르바이트 삼아 번역일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어느새 번역은 그의 주업이 되었고 '레옹', '무간도', '로미오와 줄리엣', '제 5원소', '타이타닉' 등 그의 손을 거쳐간 영화만도 19년동안 1500여편에 이릅니다. 20만원으로 시작했던 번역료는 '타이타닉'에 이르자 250만원으로 뛰기도 했다네요.


지금처럼 영어가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시기에 그의 번역을 보면 불완전한 요소들이 참 많습니다. 오역을 하다못해 거의 창작수준으로 자막을 써버리는 경우도 있었다고 하는군요. 그래서 이후 타이타닉이 재개봉 되었을 때 번역에 많은 논란을 가져오기도 했었답니다. 그럼에도 그 당시에는 영어에 능하여 번역을 하는 사람 자체가 매우 드물기도 하였고, 현재처럼 영어권 국가와의 소통이 활발하던 시기도 아니었기 때문에, 과거의 일은 과거의 일로서 생각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물론 절묘한 의역으로 사람들에게 호평을 받은 번역도 많습니다.


번역을 통해 생활고를 극복했던 그였지만 번역하는 것을 참 싫어했다고 합니다. 많을 때는 이틀에 한편씩 번역을 했었는데, 그때마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줄담배를 많이 피워 아내도 걱정을 많이 했다고 합니다. 싫어했던 이유는 배우에 대한 갈증 때문이었다고 하는데요, 번역을 하려고 테이프를 수도 없이 돌려보게 되면 그 안에 들어가 있어야 할 사람이 나여야 하는데... 하는 아쉬움이 자꾸 들어서 고문처럼 느껴졌었다고 하네요.


인터뷰에 따르면 번역가들이 구사하는 테크닉은 1000가지가 넘는다고 합니다. 번역은 한줄에 12자씩, 위아래로 24자에 장면을 담아내고 영화는 한줄에 7자 위아래로 14자로 승부를 봐야하니 어떻게 멋있게 한 자 한 자를 줄이느냐가 관건이라고. 또한 자신이 어떻게 번역하느냐에 따라 관객을 놀릴 수도 울릴 수도 있었다고 생각했던 그는 그 당시에 번역으로 교만했던 적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는 야인시대를 찍으면서 배우로서 입지를 높여가면서 서서히 번역 일을 줄여갔고 2007년 이후로는 연기에만 전념키로 했다고 합니다. 항상 번역을 해오면서 가슴 속에는 '이게 아닌데, 이렇게 살아선 안 되는데'라는 생각이 가득했다고. 50이 넘어가서야 번역을 그만두고 연기 인생을 다시 시작한 그였지만, 이제 연기를 해야만 살아있음을 느낀다고 합니다. 어렵더라도 이제 한눈 팔지 않고 배우 조상구로서 살겠다고 하니 이제 배우로서의 그의 인생을 응원해주어야 겠습니다.



많은 기사와 인터뷰를 찾아보니 그는 가족을 참 많이 생각하는 배우입니다. 특히 자신이 어려웠던 시절 7년동안 앓아 누웠을 당시에 그를 일으켜 세워 준건 그 생활고를 함께 견뎌 준 아내의 역할이 컸다고 합니다. 그래서 아내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번역일을 시작했다고 하고요. 그렇게 번 돈으로 두 아들을 건강하게 키웠다고 하니 힘들었던 번역 일에 보람도 있었겠지요. 


지금에 와서 배우가 그토록 갈망하던 삶이었던 예전과는 달리 가족이 아니면 이제 배우를 할 이유도 없다고 이야기합니다. 20년전 강변북로를 달리는데 갑자기 눈물이 나는데 그때  '내가 배우가 되려고 했던 것이 내 식구들을 편하게 먹여살리기 위해 달려온 과정이었고 수단이었구나'라는 생각을 했었다네요. 앞으로 배우로 남고 싶은 이유도 아내와 두 아들에게 괜찮은 배우로 자랑스럽게 남고 싶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어쩌다보니 영화배우이자 전문번역인이었고, 지금은 한 가정의 가장인 조상구씨에 대해 참 많이도 찾아봤네요. 앞으로도 좋은 활동 해주시기를 바라겠습니다.




[조상구의 출연작 및 번역작]




[조상구를 아십니까]는 아래의 출처를 바탕으로 서술하였습니다.


조상구 - 나무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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